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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16:14-18

by 우루사야 2024. 4. 9.

예수님은 제자가 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가득차 있는 재물을 자칫 잘못 다룰 경우 우리 또한 그 욕망에 휩쓸릴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돈보다 사람을 우선으로 여기지 않으면, 돈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욕망으로 가득찬 재물을 가지고 "사람을 사귈 수 있는" 지혜에 대해 어제 말씀 해주셨던 것이죠. 있다가도 없어질 돈으로 사람을 귀하게 대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지혜요, 가장 작은 것에 충성된 자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무리 중에는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14절입니다.

14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유대사회에서 종교적 계파 중 큰 두 무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두개파입니다. 이들은 내세보다 현세를 더 강조한 나머지 부활이 없다고까지 주장했고 지금 살아가는 현실에서 성공한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종교적 기득권층에 많이 진출해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그나마 성경적이었던 것이 바리새파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말씀을 강조한 나머지 말씀을 과대해석해버려 온갖 파생되는 율법조항들을 통해서 사람을 묶어놓았죠. 자기들은 율법을 잘 킨다는 만족감으로 스스로를 옳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사는 바리새인들 조차도 돈을 좋아하는 자라고, 즉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자라고 누가는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죠. 

성공이든 공로든, 사람보다 다른 것이 우선이 되면 모두 잘못된 신앙입니다. 하나님과는 인격적으로 관계하는 것입니다. 중간에 성공이나 공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은혜로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죠. 즉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마음에서 받아들이고 믿어서 생활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어느샌가 교제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생활이 부재한자들은 신앙생활에 열매가 없으니 꼭 중간에 무엇을 끼어넣어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죠.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해서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식으로 말이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제시하는 신앙생활의 기준을 잘 지켜야 한다는 문화가 있습니다. 교회행사와 사역에 많이 참여할 수록 믿음좋은 사람이라고 불리웁니다. 또는 사회적으로 성공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간증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다른 불순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꼴입니다. 말씀처럼 한국교회를 향해 예수님이 "나는 널 모른다"하실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주지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말씀을 잘 지키는 척하지만 사실 "돈을 좋아하는 자"라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죠. 15절입니다. 

1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부재하니 다른 것으로 채워 결국 "스스로 옳다"는 거짓된 확신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그런 거짓된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신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분명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사람 중에 높임을 받으면,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말이죠. 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옳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재하면 돈, 공로, 성공으로 나의 신앙을 채울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마음에서 시작하는 인격적 관계"로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인격적 관계의 문이 지금 예수가 이 땅에 옴으로써 활짝 열렸다는 겁니다. 16절입니다, .

16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때, 요한의 때는 구약시대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죠. 그 때도 하나님의 말씀은 있었습니다. 말씀을 간직하며 하나님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죄사함, 치유, 귀신내쫓음과 같은 "인간의 불가능"의 영역에서 보여주시고, 말씀으로 가르쳐주심으로써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종교지도자들이 돈을 사랑하며 성공과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짓말은 도저히 설 곳 없습니다. 17절입니다. 

17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율법과 반대되는, 즉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안식일이라는 율법의 온전한 의미를 밝히며 병을 치유하신 것이 가장 대표적 실례였습니다. 네, 하나님의 말씀. 인류를 사랑하여 구원하시겠다는 그 약속, 안식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그 말씀은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반드시 하신 약속과 뱉어내신 말은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하시는 것을 더 드러내시면 드러내시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18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대표적으로 이혼율법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혼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이혼 자체에 대해서 간음이라고 하시죠. 재혼조차도 간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몸으로 부부로 부르셨는데, 인간이 그것을 깨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간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 당시 이혼에 대해서 간음에 대해서 율법적 윤리의 기준이 낮아진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준은 오히려 더 높다"라고 말씀하시며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지키고 수호하고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지금도 현대 많은 교회 안에 이혼 가정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율법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이혼을 싫어하시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나의 죄와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혼뿐만 아니라 모든 죄의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죄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신뢰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돈, 성공, 공로를 뛰어넘어 하나님과의 풍성한 인격적 관계로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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