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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15:25-32

by 우루사야 2024. 4. 5.

예수님의 제자도 가르침, 즉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대한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탕자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다른 한 아들의 이야기를 더해주십니다. 이 아들은 탕자와는 다르게 아버지 곁을 지켰던 맏아들입니다. 그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보시죠. 먼저 25-28절입니다. 

25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26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27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28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맏아들은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 밭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면서 집에 돌아와보니 집에 무슨일이 있는지 잔치가 열려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니 자신의 친동생이 돌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 맏아들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분노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는가 봅니다. 왜 일까요? 자신의 친동생이 돌아왔는데, 왜 이것이 화가 날 일일까요?  이렇게 화난 아들에게 아버지가 다가와 권합니다. 같이 들어가자고 말이죠. 29-30절에서 맏아들의 대답에서 우리는 맏아들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보시죠. 

29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30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맏아들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아버지의 재산"이었습니다. 맏아들이 아우에게 화가난 지점은 집을 나가서도 아니고, 아버지에게 염려와 걱정을 끼쳐서도 아니었습니다. 집안 살림을 거덜낸 것이었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잘 일구기 위해서 애써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아버지의 것이기에 잠자코 있지만, 나중에 장자인 자신이 다 물려받게 될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차남인 동생이 먼저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상속자로써 화가 난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 아버지와 맏아들의 대화 속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다 재산이야기 밖에 없습니다. 아버지가 염소새끼라도 준적이 있느냐, 살림을 거덜낸 자식이 다시 왔다고 저 귀한 살진 송아지를 잡는 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결국 맏아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아버지보다 아버지의 재산이 더 중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마치지 않으시고 이 이야기를 더하셨을까요? 이 맏아들은 가장 은혜를 먼저 받은 "유대인"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먼저 은혜를 받은 자로써 이 은혜를 퍼뜨리고 소개하고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신이 인정받고, 자신이 다른 민족과 다른 더 선한 민족이라는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뒷전일 수 밖에 없었죠. 그것을 지적하고자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더해주신 것입니다. 이제 이 이야기의 마지막부분을 통해 예수님의 교훈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31-32절입니다.

31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3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는 자녀에게 주실 수 있는 무엇이라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가 아버지로 모시는 분은 온 세계의 창조 조물주이십니다. 주권자입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아버지의 관심사가 무엇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죽을 뻔한 자녀들입니다. 아직도 죽음의 권세 아래서 눌려있는 우리 주변인들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는 사랑과 풍요를 모르고 여전히 스스로 아버지 곁을 떠나 썩어져 없어질 것들에 끌려다니며 죽어가는 이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잃은 아들을 찾기까지 끝까지 찾아주는 맏아들을 아버지는 바라셨던 것이죠. 아버지의 농사일보다 아버지와 함께 잃은 아들을 기다리고 맞이하고 반겨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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