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고향 갈릴리. 이스라엘의 북쪽지방에서의 사역을 끝내시고 중부지방,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서였지요. 귀결점은 십자가였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중간과정이자 도구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과 인류의 화해로 해석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에 반대하는 것은 심판이요, 그것에 동의하는 것은 구원으로 귀결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입니다.
1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2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때는 안식일. 종교지도자들이 노동을 엄격히 금하다 못해 인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조차도 절제토록 한 날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는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를 하러 가셨는데, 어김없이 예수님의 행태에 꼬투리를 잡고자 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 예수님이 안식일에 치유사역을 하시는 것에 있어서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이를 갈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왔을 겁니다. 때마침 예수님 앞에 수종병 든 사람, 복부에 물이 차서 몸이 붓는 증상을 가진 사람을 앞에 두게 되십니다. 이 때 예수님은 오히려 종교지도자들에게 되물으십니다.
3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우리는 지난 시간을 통해서 안식일이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에 대한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간의 논쟁을 살펴보았습니다. 안식일이나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안식일은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사람이 사람답게, 가장 인격적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도 참된 안식일의 의미, 즉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말씀하고자 하셨던 것이죠.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께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합니다. 만반의 준비는 아마도 '이를 갈며 분노하기'로 준비했나 봅니다. 하여 예수님은 이들에게 안식일의 참의미를 가르쳐주고자 하십니다. 4-6절입니다.
4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5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6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종교지도자들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게 만든 예수를 향해 따져묻고 싶지만, 오히려 자신들의 모순이 드러났기에 답답함을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때로 우리에게 따뜻하기만 하지는 않으십니다. 우리의 모순된 행동을 향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시고, 우리의 뻔뻔함을 향해 질타하십니다.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함에도 내가 그 뜻에 충실하지 못하고 다른 것들로 뒤덮여 있는 나의 마음을 향해 성령 하나님께선 그 때마다 깨닫게 해주십니다. 과연 나는 이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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