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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13:31-35

by 우루사야 2024. 3. 22.

지난 시간에 예수님은 좁은문 비유를 통해서 닫힌 문은 절대 다시 열리지 않으니 속히 들어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는 그 좁은 문이 점점 닫히고 있는듯한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유대인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오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뜻 그 자체인 성자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일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그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좁은문이 닫히고 있음에 통탄하시며 오늘과 같은 메시지를 주십니다. 먼저 배경이야기부터 살펴보죠. 31-32a절입니다. 

31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32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예수님과 논쟁을 펼치던 바리새파 중에서도 예수님께 호의적이었던 몇몇이 있었나 봅니다. 바리새파 몇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헤롯의 계략을 알리어 해를 피하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의외입니다. 우선 예수님은 목적지를 바꾸지 않으십니다. 예루살렘으로 그대로 직행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 즉 사명이기 때문이죠. 잡히더라도, 죽더라도 하나님의 뜻인 인류를 위해 죽고 또 3일만에 살아나야 한다는 그 사명을 수행하고자 그대로 나아가십니다. 두번째, 예수님은 헤롯을 향해 여우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아기때 죽이려던 것은 헤롯대왕이고, 오늘 본문에서 등장한 헤롯은 그의 아들입니다. 그는 이복동생의 아내와 결혼하는 불법적이다 못해 폐륜적인 관계로 자신의 권력을 옹립하고자 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세례요한이라는 구약시대에서 가장 큰 선지자를 자신의 명예때문에 술자리에서 죽인 자입니다. 그런 그를 향해 교활한 자로써 전혀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여우"라고 칭하셨죠. 오히려 헤롯에게 메시지까지 전하고자 하십니다. 32b-33절입니다.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길에서도 계속해서 가르치고 치유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도착지까지 2-3일 정도의 거리가 남았음에도 예수님은 사형집행을 앞두고서도 여전히 사역을 이어오십니다. 왜냐하면 사형집행 자체가 인류를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죠. 네, 예수님께 가장 중요한 "사람을 살리는 일"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제 삼일.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잡힐 때까지의 3일이나 또는 죽어서 부활할 때까지의 3일이거나 어쨌든 헤롯은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완전해질 것입니다. 헤롯의 강퍅함은 출애굽 때 바로왕과 같이 하나님의 선한 이 구원사역을 위해 이용될 뿐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사역은 완전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내가 갈길을 가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왜 사십니까? 살아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죠. 내가 숨을 쉬고 목숨이 붙어있는 것에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살아있으니까 사는 것이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들을 내게 붙여주십니다. 부모자식, 배우자, 교우, 지인 등. 나에게 살아있는 자들을 붙여주십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라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는 겁니다. 거기에 다른 이유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살아있음이 우리인생에 가장 큰 목적이 됩니다. 혹여나 그 사이에 돈, 지위, 인정, 바램 등과 같은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때 우리는 살아있음으로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던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살아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우리와 함께 사시기 위한 이 길을 걸으셨습니다. 거기에는 중간에 다른 것이 끼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헤롯의 방해와 계략, 예수를 살리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입니다. 살아있다면 다른 이를 사랑하며 같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의 길이겠습니다. 본문으로 돌아오죠. 예수님이 어조를 바꾸시면서 한탄을 하십니다. 34-35절입니다.  

3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35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함께 살려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불러 모으셨습니다. 예수는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온 사람들을 돌로 쳤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인생길을 가로막는다고 여겼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높아지고 싶은 대로, 내 마음이 채워지는 대로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무리였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됐습니다. 그래서 거절했습니다. 자꾸 내 마음에 개입되니 더 귀찮아졌습니다. 그렇게 순종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몰래 슬쩍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속삭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나의 옳음을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죽여왔습니다. 지금도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 하나님을 몰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거절했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사형대에 올려놓고야 말았습니다. 그러한 거절은 결국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이어졌죠. 주후 70년에 로마장군 티투스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6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모으려고 하셨지만, 결국 그들은 하나님 곁을 떠나 심판의 길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최후는 끔찍하고 잔혹할 정도였지만, 거절된 복음은 이방땅으로 넘어가 수많은 영혼들을 자유로 인도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좁은문 좁은길과 같은 이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유지됩니다. 내가 스스로, 자족할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일용할 양식부터, 대인관계, 심적 의지적 영적 상태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서 보듬듯 하나님이 우리를 보살펴주시기를 구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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