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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11:45-54

by 우루사야 2024. 3. 11.

지난 본문에서 예수님은 겉모습으로 신앙생활하려는 바리새인과 그 주변 종교지도자들에게 굉장히 신랄한 비판을 하시며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 그 자체되시는 하나님이시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오히려 예수의 행태를 비판하는 바리새인이야말로 아둔할따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른 종교지도자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오히려 따져묻기 시작합니다. 45절입니다. 

45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아마 바리새인은 주변의 종교지도자들을 모아왔을겁니다. 아마도 대부분 예수님께 반감이 있었던 상태였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화있을찌어다!"라며 대놓고 이야기를 하시니, 이들 또한 마음에서 불이 일어났겠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 신랄한 비판을 하십니다. 46-48절입니다. 

46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47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48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는 실생활에서 높임을 받는 것에 대패 비판하셨다면, 율법교사들에게는 쓸데없는 율법조항들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셨습니다. 특히 자신들도 지키지 못할 것들을 학구적 욕망으로 생성해냄으로써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한 말씀에 수많은 덮개들을 씌워놓고야 말았습니다. 말씀을 가로막고 그들은 영혼들의 무덤을 만든 꼴이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율법교사가 대대로 그래왔다고 적나라하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사람은 본성상 편안하고 변화가 없는 것을 더 추구합니다. 물론 유행과 발전을 좋아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말하자면 자신이 안정권이라고 여기는 한도 내에서의 유행과 발전입니다. 그런 점에서 율법교사들은 대대로 자신들의 권력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만들어왔습니다.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추구하며 계속적으로 "율법조항"을 세분화시켜왔던 것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눅11:28)라고 지난 본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단이 보수적이다보니 우리는 항상 진보적 교단이나 오순절계통의 교단을 향해 비판하려는 태도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같은 교회 지체 중에 타인의 신앙을 아무렇지도 않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말씀과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중하며 조심스럽게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겠으나, 그들도 예수 안에서 한 가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 쓰는 것을 막았던 요한에게 예수님이 "50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눅9)고 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 더 율법교사들을 질타하십니다. 49-52절입니다. 

 

49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50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51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52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이 땅에 온 것이 예수님이 처음은 아니었던 것이죠.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온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에서 특히 종교기득권자들은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받아 온 자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아담의 아들로써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렸던 아벨로부터 왕정시대의 사가랴까지 공의를 세워왔던 이들을 줄곧 비판하고 박해하고 죽였던 불의의 한 축에 대해서 지금 예수님은 눈 앞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넘기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막았습니다. 아니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인양 말해놓고 전혀 다른 것을 말함으로써 백성들을 미혹케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말씀을 가지고 왜곡하고 순수하게 믿음으로 나아오려고 하는 자들까지도 막아섰습니다. 

1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2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굴레 씌우리라3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을 제어하는 것이라(악3)

여러분, 야고보서는 "선생이 되는 것에 대해서 신중"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가르침에 있어서 신중하기 위해 온 몸을 제어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네.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자는 자신이 먼저 그런 삶을 살아내야 할 1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율법교사들은 예수님의 질타에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기는 커녕 "왜 우리에게 모욕감을 주십니까?" 따져물었던 것이죠. 네, 겸손한 자는 듣지만,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앞에 두고 오히려 따져 묻습니다. 53-54절입니다. 

53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54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혹시 선지자들을 핍박하는 자인가요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핍박을 받고 있습니까? 혹시 말씀의 열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향해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까? 나를 옳게 여기고자 타인의 신앙을 폄하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병자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죄인입니다. 오늘도 겸손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라가고 다른 이를 섬기며 높일 수 있고, 예수 이름 안에서 한 지체들을 응원하며 기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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