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죠. 눈은 몸의 등불이기에, 우리가 무엇을 보며 마음이 밝은지 또는 어두운지 살펴야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면서도 마음이 어둡다면, 예수를 구원자로 바라보고 있는지, 스승으로 여기고 있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서도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십니다. 37-40절입니다.
37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38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39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40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41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한 종교지도자가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 우리 시대도 그렇지만 고대 이스라엘은 흙먼지가 많이 날리기에 손뿐 아니라 발까지 씻는 문화였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않으시고 점심을 드시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발을 씻는 관습은 구약성경에 언급이 되지만, 손을 씻는 것은 문화일 뿐이었습니다. 어쨌든 성경에는 없지만 종교적 관습이자 생활문화로써 손을 씻지 않는 예수에 대해서 바리새인은 의아해합니다. 예수님이 과연 이것을 모르시지는 않으셨을텐데 왜 이렇게 하시는 것일까요? 네. 예수님은 지금 이 바리새인의 마음을 꿰뚫고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바리새인은 예수를 구원자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의 뜻으로써 자신들의 전통과 관습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관습을 어기는 예수만 보였던 것이죠.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태도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십니다.
예수 자신은 흙먼지때문에 더럽지만, 바리새인은 마음 자체가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하십니다. 진짜 더러운 존재는 예수가 아니라 관습과 전통만을 내세우면서 자비를 베풀줄 모르는 종교지도자들의 마음과 정신상태라고 말이죠. 만약 손을 씻어 겉피부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하나님이 그 육신의 속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손피부만 만드시고 그 육신의 내면은 안만드셨습니까? 그들의 생각 자체가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이죠. 그래서 41절과 같이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즉 마음에서부터 자비를 베푸는 관습과 전통이 있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그제서야 하나님이 보시기에 깨끗한 존재라고 말이죠.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을 깨끗케 하시려고 예수를 보내신 것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 하려고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고,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마음에서부터 진정한 영성과 하나님께 닿을 기도와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랑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른 것을 보고 마음을 밝게 해야 하며, 그 올바름으로 생긴 사랑으로 타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올바름이 바로 예수의 삶인 것이죠. 그 예수를 앞에 두고서 비판하려고만 하는 바리새인을 비롯해 예수님은 그 주변에 있던 종교지도자들 모두를 비판하십니다. 42-44절입니다.
42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43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44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헌금생활은 하지만 가난한 이웃을 구제할 돈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헌금은 하나님 돈이고 나머지는 내 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재정관에 대해서 일침을 가하십니다. 42절 하반절에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 즉, 모든 재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맞게 모든 재정을 써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의지적으로 불가한 일입니다. 마음에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따름으로써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의 영으로 오셔서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임하셔서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사랑이요 자비요 선을 위해서 움직일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 기쁨, 자원하는 심령을 주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높은 자리보다 낮은 자리에서, 인사 받기 보다 먼저 다가가 인사하기를 기뻐하게 됩니다. 죽을 자리를 준비해야 하는 무덤과 같은 인생이 이제는 "생명과 사랑"을 낳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내 마음에서부터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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