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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6:27-35*

by 우루사야 2024. 2. 3.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4복 4화를 통해서 "하나님으로 사는 삶"으로의 선언으로써 예수님은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가 되었지만, 앞으로 갈 길은 편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아픔, 어려움, 고통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예수 이전에 인류는 그것들에 얽매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묶인 것을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선언의 구체적인 실생활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해주십니다. 27-31절입니다. 

27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28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29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30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31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제자들의 사역 앞길에 원수, 미워하는 자, 저주하는 자, 모욕하는 자들이 여전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폭력을 행사하며 뺨을 때리는 자와 제자들의 사유재산을 갈취하려는 자들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가 되었지만, 그것을 살아내야 하는 것은 제자들 당사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2지파가 모여서 다 같이 큰 전쟁을 몇차례 싸우고서 땅을 분배합니다. 각 지파가 이제 자신이 분배받은 땅에서 자치권을 수립하고 그곳에 하나님의 율법에 근거한 통치체계를 스스로 구축해내야 했습니다. 남은 전쟁을 각 지파가 각 가문별로 각 지역상황에 맞게 해내야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마귀를 내쫓으시고, 병마를 꾸짖으시며, 죄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것은 제자들이며, 그 영적원리는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싸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아갔다면, 우리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에게 선대함을, 저주하는 자에게 축복을,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를, 폭력을 행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의아합니다. 차라리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이 더 이해가 되고 쉬워보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차이를 아셔야 합니다. 이 두가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세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로 가득했던 가나안 땅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과 동시에 우상숭배가 가지고 있었던 비인격적인 문화와 전통들을 타파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존중과 용서와 사랑의 인생을 말하는 율법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끔 하셨습니다. 그 정신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전쟁이 필요했다면, 예수님 때는 전쟁할 때가 아닙니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사단마귀, 병마, 죄악과 싸움으로써 더 근원적인 싸움을 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지금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때보다 훨씬 더 막강해진 교회의 모습입니다. 전세계에 교회는 퍼져있고, 복음이 편만하게 뻗어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전세계에의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을 과연 지켜내며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었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모욕하고 저주하는 자를 향해서, 사랑과 선대로 맞서써우고 있었는가? 그것을 물으실 겁니다. 그 사람들의 모욕과 저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인격적이고 몰상식하며 몰이해적인 그들의 어둠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라는 빛을 비추는 것이 이 전쟁의 중요한 목적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2-34절입니다. 

32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33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34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예수님은 더 구체적인 전쟁의 기술에 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사랑할만한 사람들이 우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과 용서로 싸워야 하는 대상자들도, 즉 비인격적이고 몰이해적인 이들도 하는 수준의 초보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자기중심적이며 자기숭배적인 사랑입니다. 나를 위해서 나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더라도 사랑할 때 그 전쟁에서 우리는 승리하는 것임을 말씀해주십니다. 오로지 사랑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고, 용서만으로도 우리의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으며, 선대함으로써 내가 굳건하게 서있을 수 있다고 예수님은 말슴하십니다. 특히 35절 하반절에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라는 첫번째 유익,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두번째 유익까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지위가 회복되다 못해 마침내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높아질 것, 즉 피조물이 아니라 신적존재가 될 것임을 말씀해주시는 것이죠.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러분 가장 마지막 문장을 보세요. "그는 그러니까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그러하시니까 너희도 그렇게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 아비를 닮은 자녀가 될 것이다, 그 아비는 자녀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다, 공동체원들이여, 이 길이 좁고 험하더라도 나와 함께 가자!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싸움은 결코 이 세상에서 쓸 것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기억합시다. 저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닮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동체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선언해주고 계십니다. 그 길로 우리가 다 함께 갑시다. 우리의 남은 전쟁을 잘 싸워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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