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3년의 시간을 통해 인류에게 "대표적인 인간상"을 제시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계속해서 후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전달자가 필요하셨죠.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으기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것 중 하나가 또 다른 제자를 계속해서 삼으라는 말씀이셨죠. 즉 예수님을 통해 보고 배운 인간상을 계속해서 전달할 수 있는 전달자를 양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네, 우리는 예수를 다른이들에게 전해주는 전달자, 거울, 모델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도에 대해서 누가는 소개해줍니다. 함께 보시죠. 12-16절입니다.
12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13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14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15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16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총 12명의 제자를 예수님은 부르십니다. 계속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들이 예수님께서 이들을 직접 찾아가셔서 불러오셨습니다. 선택하신 것이죠. 그리고 그들에게 사도라는 호칭까지 주십니다. 사도라는 말은 "공적으로 위임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을 향해서 제자라고 부를 때가 있지요. 그러나 그 속에서 예수님과 공적관계를 맺는 이들에게 사도라는 호칭을 주신 겁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 때뿐이고 그 이후에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바울에게는 예수님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삼아주셨죠. 제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죠. 가장 먼저 베드로가 등장하고 그 이후로 10명이 차례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앞으로 예수를 팔자로써 가룟유다가 등장합니다. 어쨌든 지금 본문까지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받기 위한 제자들로써 세워집니다. 그 사역을 이 제자들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이제 함께 하고자 하십니다. 17-19절입니다.
17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18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19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17절에 보면 그들과, 그러니까 사도제자들과 함께 산중턱 평지고원에 오십니다. 첫번째 부류입니다. 그리고 산중턱까지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이 따로 사도제자들을 데리고 사도임명을 위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남겨진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들은 그 시간이 다 지나도록 기다렸던 이들입니다. 말씀을 듣고 싶어하기도 하고 병고침도 받고 싶고, 귀신도 무찌르고 싶어하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가는 19절에서 또 다른 무리 "온 무리"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더 나아가 예수를 만져서 병나으려는 많은 사람이 왔었다고 말합니다. 마치 우리가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식의 미신적 행위로 다가온 사람들이었죠.
여기서 우리는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가지 못할 사람인지 구분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단지 지금 예수님께 다가서는 이들의 3가지 반응이 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 예수님께 가장 특별하게 따로 구분받은 12명의 사도제자였지만, 누가는 그 사람이 예수님을 팔 사람이라고 먼저 우리에게 소개해주지 않습니까? 네. 예수님께 가까이 있고 멀리 있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누가는 이렇게 모인 사람들의 공통된 목적, 17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대사방, 예루살렘, 두로와 시돈 해안으로부터 많은 사람이 모인 이유는 단 한가지 였습니다.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고침도 받고,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받는 자도 고침을 받는. 예수를 통해 인류가 자유해지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12사도가 되어도 예수를 팔 자가 있습니다. 반면 예수를 미신적으로 믿었다가 예수를 위해 헌신하는 제자들도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와의 물리적인 거리 또는 정서적 친밀도가 아니라, 내면으로부터의 믿음과 순종이겠습니다. 우리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의 인생모든 문제로부터 자유케 할 신이요, 그것을 위해 이 땅에 찾아오신 대표자요 주인이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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