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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6:39-49

by 우루사야 2024. 2. 6.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예수공동체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자비롭듯이 우리도 그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3가지 비유로 설명하고자 하십니다. 가장 먼저는 맹인비유, 두번째는 나무비유, 세번째는 집비유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를 알려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이 없는 자들은 예수 공동체와 어울리지 않다는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 것이죠. 먼저 39-42절입니다. 

39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40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41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42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에서 등장하는 산상수훈은 3장에 걸쳐 길게 서술된 반면 누가는 이 설교를 굉장히 압축해서 우리에게 전달해줍니다. 그러나 중요한 메시지는 대부분을 공유하고 있죠. 그런데 누가는 여기서 분명한 비교구조를 제시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구조죠.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인도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앞을 잘 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앞을 잘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꾸 자신의 눈에 껴있는 것은 제거하지 못할 정도로 거울조차 보지 않는 사람이, 좀 더 깨끗한 사람을 향해서 지속적으로 지적을 하는 것은 오히려 "나는 내 눈에 뭐가 껴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밖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즉 앞을 보기 위한 노력이 없는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죠. 그래서 누가는 42절에 "외식하는 자"라는 칭호를 붙입니다. 겉만 경건해보이지만 그 속은 비어있는 자를 의미하죠. 그들의 중심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자기자신을 내세우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40절에서 제자와 선생을 등장시키십니다. 제자는 어떤 선생을 따르느냐에 따라 그의 성장과 지향점이 달라집니다. 올바른 선생, 올바른 목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스승이 자기자신이 되어버리면, 자기 눈에 껴있는 큼지막한 들보조차도 빼내지 못합니다. 그것을 스승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 들보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해줄 스승을 찾는다면, 그것을 빼내고 건강한 눈으로 올바른 시야를 가지고 제대로 타인을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식으로 자신의 신앙생활을 채우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번째 나무비유를 드십니다. 과연 너희 안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시는듯 합니다. 43-45절입니다. 

43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44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45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마음에 악한 것이 있는 사람은 악을 낼 것이고, 그 악은 자기자신을 최고로 여기어 자신을 스승으로 삼습니다. 결국 자신의 들보와 더러움조차 보지 못하게 하여, 더 깨끗한 사람을 향해 지탄을 남발하는 외식하는 자로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들 것입니다. 마음에 악한 것이 있는 자는 결국 악한 열매, 악한 품성, 악한 생활로 귀결되기 마련이죠. 45절에 "선한 사람은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는 분명한 영적원리를 예수님은 제시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설교 처음에 4복 4화로 시작하셨죠. 하나님때문에 사는 삶과 하나님 없이 사는 삶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하나님때문에 사는 자는 복이 있지만,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었어요. 그 주제는 여기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 없이 오로지 자기자신으로 살아가는 자는 화가 있으니 맹인이 되어 구덩이에 빠지고, 외식하는 자가 되어, 가시나무로 다른 이들을 찌르고 다니는 가시를 내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때문에 살아가는 자, 가난과 모욕, 핍박이 있어도 하나님때문에 살아가는 자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46-49절을 보시죠. 

46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47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48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49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마지막 세번째 집비유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이죠. 그런 사람은 아무리 큰 물이 나고 파도가 부딪쳐도 그의 인생은 결코 요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자기자신의 소리에만 주목하는 자는 근간이 없기 때문에, 주춧돌이 되어줄 베이스가 없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고 무너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근간과 주춧, 베이스는 하나님의 뜻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비로우시듯이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근간이 되어야 하며, 예수님은 그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 직접 보여주러 우리에게 와주셨습니다. 네, 자비로운 예수를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가장 풍성한 인생임을 우리가 기억하며, 오늘 우리의 가정직장일상에서 내가 작은 예수, 자비로운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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