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설교를 기술한 후에 바로 예수님께 반응하는 몇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소개시켜줍니다. 예수님은 설교 마무리 때 "내게 와서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굳건한 주춧돌 위에 집을 지는 사람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결론은 마태나 누가나 동일하게 표현하는 부분입니다. 즉 누가는 이렇게 주춧돌 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도록 누가는 인도해주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그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 함께 살펴보시죠. 1-5절입니다.
1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2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3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4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5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님의 집이 있었던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마을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 당시 장로라고 하면 마을의 이장이나 군수 정도로써 주민의 대표이면서도 행정력의 권한을 가지고 간소한 재판까지 처리하던 이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장로들이 와서 자기민족을 식민지로 삼고 있던 로마군을 도와달라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 마을에 있던 백부장 로마군이 유대인과 유대신앙에 친밀함을 보여 회당까지는 지어주었다 하더라도, 백부장 당사자의 일도 아니고 그가 데리고 있었던 종이 아픈 것을 가지고 온 마을이 이렇게 난리가 났다는 것이 고대사회배경에서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이야기가 이 시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방인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설교가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원들에게 주어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없었던 이방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공동체원으로 이방인도 포함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사건이기 때문이죠. 그럼 그 이방인이 어떻게 예수공동체원으로 합류하게 되는지 다음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죠. 6-8절입니다.
6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7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8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장로들의 청을 들으신 예수님은 백부장의 집으로 가기로 하십니다. 그 집에 가까이 왔을 즈음에 백부장이 지인들을 보내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백부장은 오히려 예수님께 제안을 합니다. "말씀만으로 내 하인을 낫게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백부장은 군인이다보니 상급자의 권위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병마까지도 다스리시는 상급자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그의 이런 구체적인 믿음을 두고 예수님은 9-10절과 같이 반응하십니다.
9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10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예수님은 백부장의 발언을 듣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 만한 믿음을 못봤다"라고 말하십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이 표현을 통해서 백부장은 예수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자격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 뜻을 가지고 태어난 유대인들만큼이나 회당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백부장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그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나타난 문제에 믿음을 녹여 고백하고 또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누가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반응에 대해서 보다는 백부장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과연 어떤 모습인지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백부장의 고백을 살펴볼까요? 그는 예수님이 집에 가까이 오셨을 때에 지인들을 불러 대신 나가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러면서 전했던 말이 7절에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였지요. 예수님을 단순한 스승이나 신비한 능력을 가진 선지자정도로 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듯, 신적 권위 앞에 고백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누가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주춧돌 위에 신앙을 세워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신이셔요. 우리의 영혼과 사후 인생을 모두 책임지고 계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그렇게 알고 믿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예수님을 올바로 믿고 그분께 간청할만한 것을 간청할 줄 아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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