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가 성인이 되기 전, 유년시절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인간이신 예수에 대해 강조하는 누가입니다. 먼저 40-42절을 보시죠.
40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41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42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아기 예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키도 자라고 몸무게도 자랍니다.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것의 성장도 있었다고 말해줍니다. 여러분, 어린이의 어린은 어리숙하다라는 말로부터 나온 단어입니다. 즉 예수는 어리숙한 인간의 한계로 들어오셨던 겁니다. 육신도 어리숙했고 지혜도 어리숙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예수의 어린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인성과 함께 신성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실수하지 않으셨고 죄를 범하지 않으실 수 있었습니다. 신성은 태아때로부터 계속해서 충만하게 있었기 때문이죠. 이 예수가 12살 때에도 여전히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옵니다.
인류의 모델이 되기 위해서 예수라는 하나님은 인간으로써의 최고의 삶을 살아내고 계신 겁니다. 인간이 아기때로부터 어떻게 자라고 성장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율법을 지키며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본래 이 역할을 담당하던 것이 누구였습니까? 첫인간 아담이었습니다. 아담이 하지 못했고 실패한 일을 예수가 감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실수하고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몸은 점점 죽어가는 존재가 되었고, 내면은 계속해서 죄에게 정복당해 욕심과 시기, 질투로 가득하여 그의 아들 가인은 친동생 아벨을 시기심으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신성을 가지고 인간이 되셔서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고 자라야 하는지 보여주셨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과 지혜가 자라가야 합니다. 예수는 그것을 보여주고자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 예수를 따라 성장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43-47절입니다.
43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44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45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46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47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유월절 절기가 마치고 예수는 부모와 함께 돌아가야 하는데 성전에 머무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흘 동안 아이가 없어졌으니 이리저리 찾아보지만 찾지 못합니다. 그러다 예수가 성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보았더니 광경이 놀랍습니다. 성경학자들과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 묻고 답하며 그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죠. 우리가 자라야 하는 방향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와 같이 어린시절부터 성경을 꿰뚫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가 보여준 성장의 방향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는 자라가면서 성전에서 진리를 논합니다.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이지요. 성도라는 이웃과 함께 진리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는 놀란 부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48-50절입니다.
48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49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50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알지 못하셨나이까" 어찌보면 상황이 역전된 것처럼 보입니다. 때로는 질타처럼 보입니다. 예수의 인성뿐만 아니라 신성이 나타나 하나님되신 예수가 마리아에게 진리를 가르쳐주는 상황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예수에게는 본래 아버지가 없지요. 요셉이 있긴 하지만 친아버지라고 말할 수 없지요. 네, 마리아에게 예수는 잠시 청지기로 맡겨진 것이지 요셉과 마리아의 자녀가 아니었던 겁니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가 친아버지셨고 그 아버지가 계시는 성전이 고향집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는 어린이였음에도 불구하고 46절에서 "선생들 중에 앉"아 있었습니다. 상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말해주는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집 성전에서 상석에 앉는 것은 당연한 처사겠지요. 네, 이 본문은 여타종교와 같이 교주의 유년시절때 보인 영특함을 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장자가 하나님의 뜻을 손님들에게 밝히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예수는 점점 자라가면서 이 땅에 온 목적다운 모습으로 자라갑니다. 몸과 지혜뿐만 아니라 사명에 걸맞는 생활로 말이죠. 그런데 그것은 종교적인 생활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51-52절입니다.
51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52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는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우리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십계명 중에 타인에 해당되는 계명 중 가장 첫번째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가 담겨있는 계명이라고 율법은 말해줍니다. 예수는 성전 밖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살아내고 계십니다. 그렇게 신으로써 하나님은 예수라는 아이 안으로 오셔서 그를 키워내고 계시지요. 자짓 잘못 이해하면 예수라는 사람 안에 하나님이라는 자아와 예수라는 인간 자아가 따로 있어 마치 "이중인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성자 하나님이 온전히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 즉 성자 하나님이 이제 영원토록 인간이 되려고 온전한 인간으로써 예수라는 자아 안으로 오셔서 한 사람이 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네, 예수라는 하나의 자아에 신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이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의 모범이자 모델로써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는 자라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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