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sejNafZz7XI&t=420s
30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1. 샬롬. 오늘도 하나님 말씀 앞으로 나오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오늘 본문은 로마서 9장 30절로부터 33절입니다. 제가 낭독합니다.
2. 제가 한 가지 비유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자양동 너머에 잠실 롯데월드가 있습니다. 그 재미진 곳에 가려면 잠실대교라는 큰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나는 수영을 해서 건너겠다, 그래야 내가 자격있는 사람 아니냐. 내 강인함을 보이고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롯데월드에서 놀겠다. 이런 사람이 있다고 봅시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떠십니까. 네.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지요. 롯데월드에 가서 노는게 목표지, 한강을 건너는 능력을 보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천국이라는 목표지점을 가기 위해 강을 건너야 하는데 꼭 수영해서 가겠다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31절이 이렇게 표현합니다.
31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 여기서 말한 의의 법은 모세율법을 말하죠. 이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율법의 기능은 선악을 구분해주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고,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지를 말해줍니다. 그래서 죄인인 우리는 율법을 보면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 뿐입니다. 그 기능 밖에 없습니다. 우리 안에 의가 있어야 율법으로 의를 볼 수 있는데, 의는 없고 불의한 것만 있으니 죄라는 결론만 나옵니다. 이렇게 율법을 사용한 이스라엘은 결국 율법이 원하는 기준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으로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기준에 맞춰볼려고 한 것인데 결국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수영해서 가면 좋죠. 차비도 안들고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애초에 내가 건널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다리를 의지해서 가야해요. 그 다리는 무너지지 않으니 그 다리를 믿고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의 힘으로 가보겠다고 건너려고 했다가 결국 강에 빠지고 만겁니다. 아무것도 못하는 죄인처럼 아무것도 못하는 물에 빠저 허우적 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대입장이 있었습니다. 30절입니다.
30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4. 애초에 율법이 없었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이 본래 유대인들에게 정죄를 받았던 혈통없는 자들이란 사실을 알았기에 오로지 믿을 건 하나님의 자비하심밖에 없었습니다. 혈통으로나 권위로나 가진 것 없는 이방인은 오로지 하나님의 관대하심으로 긍휼을 베풀어주시기를 고대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율법의 기준을 맞추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했던 이방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이 원했던 방식, 믿음의 방식"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의롭다, 내 방식대로 했다"라는 평가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다리를 지어주신 것은 강을 못건너니 다리 건너와라는 것이었고, 이방인은 애초에 강을 건널 생각도 못했기에 다리건너오라는 복음을 듣고 그 길로 걸었더니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칭찬을 얻게 된 것이지요.
5. 바울은 32절에 유대인들을 이렇게 지탄합니다. 32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믿지 못하고, 자신 스스로의 방식을 만들어 구원을 얻어보려고 했던 자만과 교만은 결국 스스로가 죄인임을 드러내며 결말을 지을 뿐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행위를 의지함이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위는 스스로 의지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행동입니다. 이 믿음의 행동은 곧 우리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 공로라는 인정과 믿음, 신뢰이기에 관계가 저절로 회복되는 것이지요. 33절입니다.
33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6. 이 말씀은 본래 이사야서에 기록된 말씀인데 바울은 로마교회에 있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친숙한 구약을 들어 설명합니다. 율법으로만 또는 예수의 이름과 율법을 섞어서도 아니다. 율법은 단지 우리의 방향을 알려줄 뿐이다. 우리를 움직이게 해주는 것은 예수이다. 예수라는 다리를 믿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수영하며 한강을 건너려는 사람은 점점 힘이 빠지는 자신의 팔을 보며 견고히 서있는 대교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얼마나 교만하고 자만방자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의지했던 자는 예수라는 큰 다리를 보며 걸려넘어지고 마음이 무너질 것입니다.
7. 하지만 자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또 의지할 바를 구했던 자들은 예수라는 든든한 다리를 건너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길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의 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루도 한시도 나의 능력과 자만, 오만으로 살다가는 예수님 앞에서 걸려넘어지고 무릎이 깨지고 철저히 부끄러워지는 날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 소득이 없어 보이는 예수 이름으로 하는 기도, 딴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성경을 의지하는 삶, 사람이나 재정이 아니라 내 안에 살아계신 성령님께 물어가며 옮기는 한 발걸음. 이것이야말로 가장 튼튼하고 폭풍 속에서도 견고한 다리를 건너는 삶입니다. 오늘 하루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일을 준비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강해설교 > 로마서_복음으로 사는 새로운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롬 10:9-15 (0) | 2021.09.06 |
---|---|
롬 10:1-8 (0) | 2021.09.04 |
롬 9:6-13 주일설교 (0) | 2021.09.02 |
롬 9:19-23 (0) | 2021.09.02 |
롬 9:14-18 (0) | 2021.09.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