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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20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22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23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0. 이 자리로 나아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오늘은 로마서 9장 19절에서 23절까지입니다. 본문이 길기 때문에 19절로부터 23절까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낭독)
1.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대부분 나의 생각과 경험에 의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면 후에 내 생각과 다른 생소한 상황을 맞딱들이게 되면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 왜 이러시죠?" 내 생각과 다른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죠. 이런 질문은 대부분 본인 중심에서 부정적 상황이 펼쳐졌을 때 생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본인이 만들어낸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내가 그린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을 배우고 알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2.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알기 싫어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전구절인 18절에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완악하게 할 자를 완악하게 하신다고 설명하니 바울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19절입니다. "19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완악하게 하신 하나님때문에 완악하게 된 사람을 하나님이 왜 죄를 추궁하시느냐는 겁니다. 그렇죠.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죠.
3.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한계, 우리의 모자람, 우리와 하나님의 차이와 간극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밥을 차려준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합니까? 아이는 밥을 차릴 수 없으며, 차린다하여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더 자세히 말해보면 불을 다룰 수 없고, 전기밥솥을 킬 수 없으며, 제대로 된 영양소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다는 의미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구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아니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밥차리려 하다 뜨거운 불에 데이고 냉장고에서 떨어지는 반찬통에 머리나 발을 찧고 결국에는 엄마를 외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지요.
4.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구원과 우리의 행함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우리의 의지가 몇 퍼센트로 서로 섞여 구원이 만들어질까? 내가 혹여나 지옥행이라면 하나님이 더 큰 퍼센테이지를 차지하고 있으니 책임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도식이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차원이 다른 곳에서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일하고 계시고,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의 구원을 확인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이 100% 일하시는 것으로 이뤄지며, 그 구원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의 죄악이 100% 일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20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5. 하나님은 만드는 이로서 이렇게도 만드시고 저렇게도 만드십니다. 그 자유는 만들기 전이나 만든 후에나 그대로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그 자유를 우리에게도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이 만든 형상 아래서 자유의지를 발동하여 살아갈 뿐입니다. 그 역할과 경계 안에서 우린 살아갑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따져 물을 수 없단느 것이지요. 22-23절입니다.
22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6.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토기장이 앞에서 그릇일 뿐입니다. 내 인생이 구불거리는 인생일때도 있고, 곧게 뻗은 때도 있습니다. 어떨 때에는 기쁨이 또 어떨 때에는 슬픔이 있기도 합니다. 그 때 그 때마다 생소한 환경을 두고 우리는 불평하기보다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런지 기대하면서 그 길을 걸어갑니다. 본래 우리는 피조물이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흙덩이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생명을 불어넣으시어 인간이라는 독특한 자유를 가진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거기까지 입니다. 그럼 우리는 먼 미래에 주어질 구원의 여부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최선일 것입니다. 긍휼의 그릇일런지 진노의 그릇일런지 우리는 아무도 단정지을 수도 또 알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삶을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입니다. 그것이 피조물 된 우리의 합당한 삶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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