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착공식이 열리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온 길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주변민족이 위협을 가한다고 해서 멈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함께 살펴보시죠. 먼저 8-9절입니다.
8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9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시기를 무어라고 말합니까? 성전에 이른지 이년 둘째달. 어제 본문에서 제사드릴 때가 초년 일곱째달이었지요. 그러니까 약 반년 정도가 흐른 뒤에나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본문에서 살핀 바와 같이 주변민족들에 대한 위협으로 제사만 드리고 돌아갔기에, 돈을 주고 시돈과 두로 사람을 사서 공사자재를 운반케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스라엘 손으로 직접 해야 할 때가 옵니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지금,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지 두번째 해 둘째 달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소에 대한 언급을 무어라 합니까?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때 성전은 커녕 제단만 덩그러니 있을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외형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렸다는 사실"이기 때문이겠죠.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그곳에서 그 약속을 실천함으로써 그 장소는 이제 더 이상 돌무더기나 폐허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된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시지, 내 인생의 성공여부에 의미를 두지 않으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를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누가를 보지요. 8절에 보니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나타납니다. 처음부터 일관성있게 두 사람을 통해서 일이 이뤄집니다. 그리고 그 뒤에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성전을 관리하는 자들이 주도권을 갖는 것은 합당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사기 말미에서 마음대로 레위출신과 제사장직이 혼용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때에는 질서있는 모습으로 기초가 쌓이는 것을 보게 되지요. 이들을 향해서 8절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라고 묶어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들은 바벨론에서 태어났지만, 더 큰 맥락에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고향에 돌아온 자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민족은 100년 전에 하나님께 크게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 은혜가 지금도 이어져 우리가 복음을 믿고 있습니다. 다시 그 은혜로 돌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국강병이라는 거품을 거두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진정으로 기도하는 민족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착공에 대한 세부정보를 살펴보았습니다. 드디어 착공식이 열립니다. 10-13절입니다.
10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11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12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13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성전의 기초를 다지는 첫 삽을 뜰 때에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이뤄주심에 대한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주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도다" 시편에서 가장 애용되는 표현으로 찬양합니다. 그런데 반응이 두 부류로 나뉩니다. 2세대들은 기뻐하며 크게 함성을 지릅니다. 지금 바벨론포로가 돌아온 길이 약 2000km가 넘습니다. 성전기물을 어깨에 이고 가족을 이끌고 이주를 해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성전건축이 있다는 일념하나로 말이죠. 그리고 그 언약이 성취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확증을 얻으니 기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반응은 슬픔이었습니다. 아마도 수많은 장면들이 회상되던 바벨론포로 1세대들의 복잡한 감정의 표현이었을 겁니다. 12절에 보니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여기서 첫성전은 솔로몬이 지은 위용있는 성전을 말합니다. 그것을 어렸을 때 보고 자란 나이많은 몇 안남은 원로들과 족장들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지는 것도 보았던 자들입니다. 그리고서 타국땅에 포로생활을 70년을 하고서 돌아와 다시 본국에서 성전이 세워진 것을 보면서,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그럼에도 하나님의 손길로 이렇게 영광의 순간을 누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느끼고 생각이 들었겠지요. 13절을 보니 이렇게 기쁨의 환호와 슬픔의 통곡이 뒤섞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멀리서도 들렸다고 합니다. 이들의 신앙과 열정을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인듯 합니다.
고대하며 2000여km를 이주하듯이 우리도 천국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안에는 더 친절한 하나님의 계시와 증거들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양심, 이성, 감정, 내면에서 일하심으로써 용기와 소망을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방향, 신앙의 경로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함이라면 오늘 나의 모습도 성전이요, 마침내 마지막날에 뵐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한 성전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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