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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히브리서_예수의 자리매김

히 9:1-10

by 우루사야 2023. 11. 14.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계속해서 히브리서 사도는 구약시대의 율법, 대제사장, 성막, 제사 등을 신약시대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대등한 것으로써 비교가 아니라 예고편 대 본편식의 비교였습니다. 제가 일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아 신앙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유대교로 돌아오라는 회유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유대교로 돌아가서는 안되는 이유를 이렇게 낱낱이 말하는 것이죠. 오늘은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시 여겼던 성소가 등장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뒷부분 9-10절부터 보시죠. 

9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10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이 장막, 그러니까 구약시대 모세로부터 세워졌던 하나님의 성소텐트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비유"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비유입니까? 현재까지의 비유. 그러니까 현재시점에 이뤄진 것에 대해서 과거에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되었던 비유라고 말하는 겁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는 예고편만을 보여줍니다. 개봉전까지 사람들은 예고편만 가지고 본편을 예상할 뿐인 것이죠. 그런데 예고편으로는 온전히 본편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듯 9절에서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로는 사람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온전히 깨끗하게 해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어떻게 깨끗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예법소개일뿐이죠. 물론 이것이 구약성도에게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너무나도 기다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고편이라고 해도 간단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이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성격과 본질을 알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5절 하반절에 "이것들에 관하여 일일이 말할 수 없는 정도"라고 말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이 예법이 아니었습니다. 이 과정들을 거쳐서 어디로 어떤 목적으로 나아가느냐에 있는 것이죠. 6-7절입니다. 

1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2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3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4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5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7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성막은 두 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번째 방을 지나서 두 번째 방에 가야 하나님이 임재해계신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곳은 대제사장이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나서 일년에 한번만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만나야 보호를 받고 안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으며 하나님께서 구원의 영생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가 생략한 1-5절까지는 이 지성소까지 가기 위한 여러 절차들이 있습니다. 등잔대, 진설병상, 금향로, 언약궤,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 언약의 돌판, 언약궤를 덮는 천사들까지. 사도는 "낱낱이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까지 말합니다. 그것을 사도는 8절에서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8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성소로 들어가는 길, 그러니까 하나님께 들어가는 길이 나타나지 않았었다고 증거하셨습니다. 그 말은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은 열렸다는 의미지요.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우리에게 임재하시고 우리에게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제 나 자신 자체가 성소가 되었습니다. 내가 지성소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처소요, 우리가 멜기세덱으로 예수를 증거하는 자입니다. 다시 유대교로, 옛 막힌 장막시절로 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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