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예수를 잘 믿고 계십니까? 여러분 영혼의 죄와 악함을 예수 대제사장으로부터 씻김받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그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고집과 아집으로 계속 붙들고 계십니까. 오늘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죄와 싸워 이기길 소망합니다. 어제와 같은 주제로 계속 살펴봅니다. 11-12절입니다.
11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장래 좋은 일. 그러니까 새로운 영적시대를 위해 오셨습니다. 동물제사가 아니라 "자기의 피"를 희생시킴으로써, 제사드림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자유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온갖 절차들이 있었고, 1년에 1번 1명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즉, 들어갈 수 없는 곳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통해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15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죄라는 녀석은 "죽음"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배신과 배반은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문제입니다. 중재로 잘 풀어낼 수 있지 않느냐 말할 수도 있습니다. 꼭 극단적으로 누군가 죽어야만 해결되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친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본래 죄와 죽음이 없던 세계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생명을 스스로 구걸해야 하는 존재로 스스로 전락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라는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고 자기자신이라는 것으로 생명을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살아감은 곧 소비됨, 결국은 죽음을 뜻하죠. 이 죽음의 실수를 어떻게든 만회해 죽지 않게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그냥 하나님께 돌아갈 순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 어긋나버린 것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인간은 죄를 지어버릴 것입니다. 그럼 온 세계가 왜곡되어져 버리고, 선하신 하나님과도 맞지 않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누군가는 해결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의 피로 자신이 대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신이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희생의 제사를 드린 것이죠. 그 결과 인류의 죄의 댓가가 치러졌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선한 양심을 다시 찾게 되었고 본래 하나님의 계획대로 자녀가 되어 유산을 받고 기업을 받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가 죽어야 해결될 문제입니다. 마치 유언과 같습니다.
16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17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유언이라는 장치가 죽음을 동반하듯, 죄해결도 죽음을 동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22절과 같이 "피흘림이 있어야 사함도 있는 것"이라고 사도는 말합니다. 게다가 이 땅의 것들은 동물의 피로 깨끗하게 했다면, 하늘에 있는 것들은 동물의 피가 아니라 더 고차원적인 희생의 피로 우리를 위한 길을 여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피였던 겁니다. 하나님 지성소로 가는 길이 동물의 피가 뿌려졌다면, 저 천국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가는 길은 예수의 피가 뿌려져 거룩해지니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24절입니다. "24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18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19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20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21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22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23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예수의 죽음은 첫번째 인간의 죄를 대신해 흘린 제물의 피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 곳곳에 뿌려져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신과 연결되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물리적인 인간이 초자연적인신에게 갈 수 있는 길이 예수라는 신의 죽음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지요. 너무나도 신비하고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영적원리입니다. 이것이 인간 대제사장과 본질적인 차이입니다. 인간 대제사장의 제사는 오로지 죄를 사함받기 위한다는 목적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흘림은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갑니다. 죄와 상관없이 예수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최종적인 구원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28절입니다.
25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26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27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어주셨다는 것은 대신 벌받으셨다는 단순한 가르침으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오늘 히브리서 사도는 더 깊고도 신비하고 아름다운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오늘도 우리가 왜 예수를 믿으며 살아가야 할지, 마지막 날에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오늘도 예수와 함께 명예롭게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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