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대제사장과 유대교 리더들이 작정하고 바울을 고소하려 합니다. 이제부터는 공적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유대교 안에서의 일이 아니라 로마행정부가 개입해버린 상황이 되었기에, 뒤로 무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유대총독 벨릭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노예출신이지만 총독의 자리까지 온 자로써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 주님이 바울을 어떻게 인도해가시는지 함께 보시죠. 먼저 10-12절입니다.
10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11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12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13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지난 시간에 더둘로의 변론은 미사여구와 함께 허술한 논리와 근거없는 주장이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서 본 바와 같이 바울은 딱 할말만 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전염병을 퍼뜨리는 것과 같은 자라는 고소내용에 대해서 11절에서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지 12일 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소동을 일으킨 것을 그들은 보지도 않았고 그래서 지금 증거와 증인도 없이 고소하고 있음을 밝히며, 그들의 허술한 고소논리를 무력화 시키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나사렛 이단이라는 고소내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4-16절입니다. "
14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15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16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보니 바울은 이 고소내용에 대해서 반은 맞고 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선 14절에서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라고 말하면서 '그렇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도를 따르는 자다'라고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그 도에 대해서 설명허기를 첫번째,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며 둘째,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믿으며 셋째, 부활의 소망을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넷째, 선한 양심으로 살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이 믿고 따르는 도가 유대교와 틀린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유대교에서 더 연속성이 있는, 즉 유대교의 성취로써 기독교로써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전을 더럽혔다는 고소내용에 대한 반론입니다. 17-21절입니다.
17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18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19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20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21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바울은 여기서 굉장히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먼저 자신이 민족구제를 위해 왔으며, 유대교 결례 즉 예식을 행하기까지 했고, 그 때 어떤 소동도 없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오히려 고소를 하려면 소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그 난리를 치며 소동을 일으켰는데 왜 이 고소하는 자리에 없는지 그것이 더 의심스럽다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오히려 소동이 있을 때 바울은 부활교리를 믿음으로써 바리새파 사람들의 동조 아래에서 사두개파와 논쟁이 더 커졌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이렇게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재판이 마쳐지게 됩니다. 그리고 2년 동안 가택연금과 같은 수감생활을 시작합니다. 활동도 자유롭고 만남도 자유롭지만 로마행정부와 로마군의 시야 밖으로 떠나지 않게끔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살펴봤듯이 이런 조치는 오히려 바울에게 안전을 보장해주는 조치지요.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예루살렘 입성을 공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잘 마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 다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들이 무엇일지 기대가 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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