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에베소에서 큰 환란을 넘겼던 바울이었습니다. 소동은 잠잠해졌지만, 에베소에는 아직도 바울을 예의주시하는 시선이 많아졌습니다. 이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떠나기로 합니다. 2차 전도여행 때 만난 성도들을 만날 계획이었죠. 이 여행을 3차 전도여행이라고들 부릅니다. 그 사이사이에 사역들이 있어서 누군가는 이것을 4차 5차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우리는 대체적으로 부르듯이 이 여행을 3차 여행이라고 지칭하겠습니다. 그런데 3차 전도여행은 시작부터 무언가 의미심장합니다. 1-3절을 먼저 보시죠.
1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2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3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에베소에서 떠나는 바울이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로 가게 됩니다. 2차 전도여행 때에는 튀르키예 북서쪽에 있는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건너갔다면, 3차 전도여행인 오늘 본문에서는 튀르키예 남서쪽에 있는 에베소에서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로 가게 된 바울이었습니다. 그렇게 2차 때 갔던 경로대로 차례대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을 살폈을 것이고 마침내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가르쳤던 고린도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2절에서 말하는 헬라가 바로 고린도를 뜻하는 더 큰 지역적 명칭입니다. 여기서 3개월을 머물며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모금한 헌금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이 '유대인들이 해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자신으로 인해 에베소 신자들이 해를 입을까 하여 되도록 빨리 길을 떠난 바울이었습니다. 이제는 고린도에서 좀 쉴 수 있나 싶었지만, 또 그를 해하고자 하기에 바울은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포기하고 다시 걸어서 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 올라가 마게도냐를 거쳐 가고자 합니다.
자유와 개인이 강조되는 우리 시대에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본문이 계속 등장합니다. 타인의 종교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탄압하고 억압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는 아무리 헌법으로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보호한다고 해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을 막을 순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예수를 따르는 제자와 신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기 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그런 영향력은 악한 사단마귀를 향한 공격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삶과 활동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사단마귀는 우리에게 그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조종하려는 수작밖에 부릴 수 없고, 우리의 몸을 해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과 생각이 성령 하나님의 충만함과 하나님의 섭리, 예수의 대속과 부활로 채워져있을 때 그들은 그림자, 안개, 어둠, 공허함과 같은 허무한 것들 밖에 되지 않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해하려하는 자들을 피해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길을 떠납니다. 굳이 부딪히지 않고 교회의 안전과 연합, 복음의 위로를 전하는데 집중하는 그의 행보가 돋보입니다. 4-6절입니다.
4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5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6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아시아, 그러니까 튀르키예 땅 소아시아로 빌립보에서 드로아로 다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4절을 보니 지금까지의 바울팀의 면면이 드러나게 됩니다. 여러 팀원들의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 출신지들을 보니 베뢰아, 데살로니가, 더베, 아시아라고 지칭된 에베소 등이 나타납니다. 이곳들이 어디입니까? 다들 바울팀이 전도여행을 다녔던 곳이지요. 그곳들을 다니며 바울팀의 사역에 동역하기로 한 자들이 한명 한명 함께 했던 겁니다. 바울과 이들이 함께 고난도 당하고 억울함도 당했지만, 함께 예수와 부활복음을 전하면서 한 교회공동체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5절에 보니 바울보다 앞장 서서 이 팀원들이 먼저 가서 바울이 안전하게 건너올 자리까지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울과 누가는 드로아로 안전하게 건너와 일주일 동안 머물며 숨을 돌리게 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12제자를 한명 한명 부르던 장면이 오늘 본문에서 많이 생각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한 사람 한사람에게 성령세례와 부활증거를 전해주었을 것이고, 이에 감격하며 부르심이 있는 자들은 바울팀 사역에 동역했을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만의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난과 핍박이 있을지라도 예수와 부활, 성령세례를 전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섬김을 위한 공동체가 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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