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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사도행전_따라가는 길

행 16:1-10

by 우루사야 2023. 8. 30.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누가는 처음에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를, 그리고나서는 바나바와 안디옥 교회에게 우리의 시선이 집중되게 했지요. 이제 16장에 와서는 오로지 바울의 사역에게로만 집중케 합니다. 2차전도여행을 떠나는데 있어서 바나바와 떨어져 사역하게 된 바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그릇"으로 삼으신 그의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래서 땅끝까지 증인이 되게끔 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한 사람을 통해서 이뤄지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5절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2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3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4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5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헤어졌어도 사역을 위해 나아갔습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섬으로, 바울은 소아시아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곳에서 귀한 인연을 만나게 되는데, 바울이 아들이라고 칭하며 불렀던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디모데는 어머니는 유대인 아버지는 이방인이었기에,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라면 나서 8일째 되는 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는 징표로 할례를 받는데, 디모데는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바울은 같이 동역하고자 디모데를 데려가기 위해서 "할례"를 행합니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분명 율법은 완성되었기에, 그 어떤 무거운 신앙의 짐도 짊어지게 하지 말자고 의결했습니다. 최소한의 조치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지킬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할례라는 율법을 디모데에게 굳이 시행하는 것일까요? 아직까지 바울은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에게 나아가는데 있어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과 교제한다는 벽을 간단히 뛰어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할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죠. 바울은 후에 디도라는 제자를 한명 더 만나는데 그에게는 할례받지 않게끔 합니다. 이방인들이 율법에 대한 부담을 느끼며 실족할까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복음의 전파"였던 겁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따라 영혼의 자유, 복음을 받아들이는 영혼이 바울에게는 가장 중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본질적인 일을 위해서는 이렇게도 옷을 입고 저렇게도 입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영혼과 복음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바울의 길에는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는 귀한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해도 감사할텐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더 정확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6-10절입니다. 

6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7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8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9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10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디모데를 대동하여 사역을 하며 교회가 더 부흥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령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더이상 사역하지 못하게까지 막으십니다. 7절에 비두니아라는 곳은 바울이 1차때 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새로운 곳에 가는 것도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환상으로 명확하게 뜻을 보이셨습니다. 소아시아를 떠나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방인을 향해,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이들을 향해, 땅 끝을 향해 나아가라는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해주십니다. 예루살렘에서 더 멀리 나아가게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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