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핍박을 받아 근처 도시로 도망가게 됩니다. 40km정도 떨어진 루스드라라는 곳인데, 이곳은 번화가도 아니고 교역중심지도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산골짜기 구석에 있는 작은 도시였고, 그렇기에 유대인의 회당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8-13절입니다.
8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9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10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11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12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바울과 바나바는 쫓겨난 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역을 멈추지 않습니다. 루스드라에 보니 나면서 앉은뱅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표현입니다. 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만났을 때와 표현이 거의 유사합니다. 네, 누가는 예루살렘 유대인에게 일어났던 일이 이방땅 골짜기에서도 일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켰듯이, 바울은 "일어서라"고 명령합니다. 이를 두고 주변에 많은 원주민들이 놀라며 기뻐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의미심장합니다. "신들이 내려왔다"고 말하면서,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부릅니다. 그리스 신화가 많이 퍼져있던터라 루스드라 사람들도 그 신화를 믿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강력한 신 제우스와 그의 아들 헤르메스로 바나바와 바울을 지칭하는 것이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자 표현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이런 소식은 삽시간에 도시 전체에 퍼지게 됩니다. 제우스 신을 두고 섬기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들이 제물과 꽃을 들고 와서 바울과 바나바를 두고 제사를 드리려고까지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선천적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이야말로 신의 능력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처사였겠지요. 이에 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14-18절을 마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14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15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17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18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바나바와 바울은 옷을 찢으며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고대에 옷을 찢는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를 굉장히 강하게 비관하는 모습입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사건이 일어났고, 그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지요. 그런데 그것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오니 그들은 자신들이 심판당할 처지에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재빠르게 조치를 취합니다. 마치 12장에서 두로와 시돈 사람들 앞에서 "신"이라고 칭송받았던 헤롯이 죽은 사건이 기억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소리를 지르며 이러한 행태는 잘못된 것임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소개하게 됩니다.
(1) 바울은 자신도 같은 사람임을 밝힙니다. (2) 인간을 향해 신이라고 외치는 헛된 일을 버려야 함을 말합니다. (3) 오히려 이 천지를 만들정도로 위대하신 신, 하나님이 계심을 소개합니다. (4) 그 하나님은 이런 치유사건때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스스로를 밝히시고 계시하셨습니다. 특히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며, 열매가 맺게 하시며, 인간이 음식을 먹으며 마음에서 기쁨을 누림으로써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생각하게끔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치유사건에 하나님이 드러났다고 말하느냐, 그것은 헛된 것이며 오히려 인간의 본능으로 섣부르게 결론을 내버리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죠.
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보다 더 섬세하고 자세하고 쉽게 하나님이 당신 스스로를 계시하셨습니다. 내 마음에서 사랑이 샘솟고, 예수 십자가로써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소망을 가지고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말이죠. 마침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심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사역, 성경, 십자가와 성찬, 자연만물을 보며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예루살렘에만 가둬두지 않으시고, 이방땅으로 그리하여 마침내 이 한국땅 2023년에도 우리가 받을 수 있게 해주셨음을 기억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내 곁에도 하나님이 일하시고 복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일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동역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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