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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사도행전_따라가는 길

행 6:8-15

by 우루사야 2023. 7. 21.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제 본문에서 제자공동체는 내부의 원망을 섬김으로써 해결해, 섬기는 교회로 더 나아가게끔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본문이 되는 오늘 구절에서 제자들이 세웠던 7명의 집사 중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특히 오늘부터 며칠간 이 집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살펴보게 될텐데 우리가 생각했던 "집사"와 이미지가 상당히 다릅니다. 8절부터 보실까요? 

8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네, 바로 스데반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사역에 대해서 보니 "은혜와 권능이 충만"해서, 놀라운 일과 신비한 기적을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집사나 사전적 정의의 집사는 "주인 가까이 있으면서 그 집 일을 맡아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행보는 사도와 가까울 정도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살펴볼 스데반의 변론을 보면 성경에 능통하여 공의회 사람들을 가르치기까지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9-10절입니다. 

9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10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게다가 스데반은 유대교 회당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말씀을 가지고 논쟁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보통 교회의 집사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네, 사실 사도행전에서의 집사라는 단어는 21장에 가서 딱 한번 등장하는데, 이것도 사실 집사가 아니라 "사도의 보조자" 역할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사도들과 함께 말씀사역, 기도사역, 치유사역을 함께 도맡으면서 사도들이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제나 행정사역들을 함께 했던 것이지요. 

교회에서 가장 위험한 사고방식 중 하나가 이분법입니다. 일요일은 거룩하고 나머지는 아니고, 십일조는 거룩하고 나머지 십의구는 마음대로 써도 되고, 예배당은 거룩하고 그 밖에 나오면 괜찮고. 이런 식의 시공간과 물질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생각함으로써 "차등과 우열"을 주는 것은 미신적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십상입니다. 사도와 집사의 차이와 구분은 "하나님의 사역의 중심"이냐 아니냐라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사도들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선택하심"에 있을 뿐입니다.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이 선택해오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많은 사사들, 제사장들, 다윗 등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한 선택하심"때문에 사용받았습니다. 제자와 집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으로 인해서 세워졌을뿐,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어질 조건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사도와 집사를 역할로써 구분할 뿐이지 그 밖의 다른 것으로 구분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도들과 같이 7집사들은 굉장히 교회의 사역을 활발하게 참여하고 또 이끌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현대교회에서 목사에게 집중되는 교회는 그렇게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가장 건강한 교회는 목사나 평신도나 함께 사역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교회의 중심으로써 목사가 서있어야 하겠지만, 평신도로써 중직자들이 함께 말씀사역과 구제사역에 함께 뛰어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이나 구제나 목사나 평신도나 구분은 없었습니다. 모두 함께 할 일이고 함께 해야 하는 교회로써의 방향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스데반이 활발히 활동하니 잡혀가기까지 합니다. 11-14절입니다. 

11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12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13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14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이들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매수, 모독, 충동, 거짓. 어떻게든 빛으로 드러나는 진리를 어둠으로 덮으려는 세력의 특징들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성령이 주시는 진리로 드러나있지 않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이들과 같이 중심세력으로 기득권층이 되어서 "말씀과 기도사역으로 활발해지고자 하는 자"를 핍박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내 안에 과연 어떤 단어들로 내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있는지 또는 막아서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들은 스데반을 모함하기 위해서 스데반이 하나님을 모욕했다거나 거룩한 율법을 거슬렀다, 또는 율법을 뜯어고치겠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거짓주장을 합니다. 이분법에 가득찬 이들이 이분법으로 진리를 덮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15절입니다. 

15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누가는 스데반을 표현하기를 "천사의 얼굴"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얼굴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무덤에 나타난 두 천사의 모습이나 하나님을 시내산에서 뵙고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와 같은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자의 얼굴"인 것이지요. 여러분. 교회에서 목사, 평신도, 교회 안과 밖, 일요일과 평일. 이 구분은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세상이 다가오고 있고, 그렇게 완성된 인생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성령의 성품으로 광채와 진리의 빛을 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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