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본문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심판을 받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말미암아 교회는 큰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로 모이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되기 보다, 오히려 교회가 더 정결하게 모이게끔 하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교회로 모이되 높아지고자 모이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고 섬기기 위해 모여야 한다는 "교회의 방향성"이 초자연적인 일로 제시가 된 것이지요. 그러한 내용이 오늘 본문에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시죠. 11-12절입니다.
12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13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많은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죄사함과 병고침 사역을 함께 병행하심으로써 "천국이 이뤄지는 모습"을 제시해주셨고, 제자들은 천국을 만들어가는 사역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사람들은 베드로가 설교를 하던 넓은 공간 "솔로몬 행각"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모일 수 있는 성전, 그 중에 가장 넓은 곳 중 하나인 큰 복도에 모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13절에 모니 "그 나머지" 사람들은 그 모임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 나머지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12절에 보니 "민간"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네, 보통 평민, 보통시민들은 원한다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병고침과 죄사함을 얻으러 나왔습니다. 그러나 고위층이거나 교회에서 체면을 차려야 하는 특권층민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인해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찔림이 생겨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프고 힘들고 삶이 힘들어 나온 일반시민, 평민들은 행각에 모여 제자들을 기뻐했고 모이기를 즐겨했던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교회에서 체면을 차리고 싶어했고,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어떤 직종과 어떤 직위를 가졌기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한 죄인이 되기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하다가 결국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교회에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높아지고자 해서는 안된다는, 하나님 앞에서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에게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기준을 세우시고자 단번에 역사하시는 일들로써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그 자리에서 죽이셨습니다만, 지금은 자비로 우리에게 이 사건을 상기시켜주십니다. 우리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다를게 없습니다. 다만 이 사건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또 교회 앞에서 청결한 마음,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14절에 보니 "14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였다고 말할 정도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교회가 더 부흥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교회의 크기는 이제 솔로몬 행각 공간으로 메어놓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15-16절입니다.
15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16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베드로가 길거리로 지나갈 때에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모여들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을 너머 부근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까지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두 가지가 기억납니다. 승천하실 때 하셨던 약속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성령이 임하시자 120명의 제자들은 각국의 언어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치유와 죄사함의 역사가 예루살렘을 너머 이제 땅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약속은 최후의 만찬때 였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요14:12) 이것은 예수님보다 규모적으로 더 큰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더 큰 증거들이 성령의 임재를 받는 자들에게서 나타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이요 약속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두가지 약속은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천국의 증거들이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심판조차도 복음확장을 위해, 하나님 앞에 정결케 되는데 쓰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서 복음이 더 전해지고 증인이 되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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