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사건을 통해서 더 견고해졌던 초대교회입니다. 사실 교회의 부흥을 악한 사단마귀는 막으려 애를 썼습니다. 예수를 죽였고, 제자공동체를 와해시켰습니다. 이제는 교회의 내분을 일으켰지요. 그리고 계속해서 공격하는 채널이 바로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두번째로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어서 공동체를 와해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전략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뻔합니다. 진리로 밝아져있는 신자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제자들은 이런 위기를 또 해쳐나가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7-21a입니다.
17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18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19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20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21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사단은 종교지도자들의 마음에 진리를 향한 갈망과 열정이 아니라 "시기"를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둡니다. 그간 베드로와 여러 예수의 제자들이 설교, 변론, 증거를 통해서 말하고자 했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통해 전해질 복음은 그들의 시기로 통로가 막혔습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일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옥에 갇혀진 그들에게 하나님의 종을 보내어 옥에서 나올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보내시는 곳이 잡혔던 성전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다시 복음을 전하러 나갑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내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마16:20)고 하곤 하셨죠. 왜냐하면 치유나 기적과 같은 것들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져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의 진짜 모습은 "부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계속해서 증거하게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빛은 다른 외부적인 환경으로 꺼질 수 있지만, 어둠을 통해서 빛이 사라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은 하나님의 사역을 막을 수도 또 없앨 수도 없습니다. 다만 외부적인 환경을 끌어들여 하나님의 사역을 막게끔 하는 것이지요. 마치 종교지도자들에게 시기의 마음을 주어서 말이죠. 그렇습니다. 사단은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인간을 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마음"을 지키기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잡혔던 곳으로 가서 진리를 드러내라 하시면, 우리는 진리와 진실, 사실을 드러내는데 순종하면 됩니다. 우리의 가정, 직장, 일상에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순종해 빛으로 드러내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다음구절을 보죠.
21b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22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23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24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25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26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종교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도 못한채로 제자들을 심문하고자 그들을 감옥에서 데려 오라고 합니다. 어둠에 갇힌 자들은 분별하지를 못하니 빈 감옥만 드나들 뿐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들이 "시기"로 가득차 있으니 하나님과 아무것도 동역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신비한 이 일 앞에서 "의혹하고 의심하며 믿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성전에 굳건하게 서서 자신들이 확인하고 믿는 바를 백성에게 가르칩니다.
여러분, 진리를 알고 또 진리로 사는 자들은 굳건합니다. 그러나 다른 마음으로 사는 자들은 허리를 굽힐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다가 자신이 더 높은 자리에 있다하면 그제서야 허리를 피죠. 과연 우리는 누구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내 안에는 완성된 인생이 있습니다. 그것을 약속하신 성부 하나님, 그리고 그것을 이뤄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것을 증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27-32절을 보겠습니다.
27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28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29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31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32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종교지도자들은 여기서 다시 한번 사단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 행위를 애써 묻어두려고 합니다. 예루살렘 온 백성이 다 아는 사실을 말이죠. 그들은 아마도 가룟유다나 본디오 빌라도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본디오 빌라도는 행정적 절차에 있어서 담당자였습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를 넘긴 자이지 죽인 자는 아니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예수를 죽인 자는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라고 콕 찝어 지칭합니다. 그리고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서 엎드리라고 권고합니다.
여기서 종교지도자들은 시기뿐만 아니라 회피도 보여줍니다. 자신들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했던 간밤의 의회, 본디오 빌라도를 향한 압박, 무리선동 등은 모두 기억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정치적, 법률적 회피만 보여줄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만난 적도 또 예수를 칼로 찌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 오류, 범죄, 악함을 책임질 대상으로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회피해서도 안되겠습니다. 우리 마음에 시기와 악함으로 가득함을 인정하고, 우리의 죄를 회피하지 말고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내가 책임져야 할 죄들이 있음을,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음을 말이죠. 그럴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빛의 자녀요, 증거할 진리로 가득한 자로 만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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