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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사도행전_따라가는 길

행 4:1-12

by 우루사야 2023. 7. 12.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베드로가 계속해서 교회의 중심으로써 "해석"해나갑니다. 성령강림과 앉은뱅이 치유사건이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미리 계획하신 대로 이뤄져가는 표징임을 해석해줍니다. 이에 따라 신자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확신을 주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결코 몰이해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지 않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수많은 약속과 표징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은 계획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구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다시 한번 말하게 되는데 그전에 설교하던 상황과 다른 "변론"을 옥중에서 하게 됩니다. 그의 말을 다시 한번 주목해보죠. 먼저 그가 갇힌 배경입니다. 1-4절입니다. 

1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2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3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4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가 잡힐 당시 도망치던 모습에서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디서든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합니다. 어찌보면 그것이 당연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시기 전에 그들은 단순한 "인간"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성령을 모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확신하고, 성령과 교제하며, 성령으로 힘을 얻었기에 언제 어디서든 부활하신 예수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 그 당시 사두개인을 중심으로 한 성전중심세력이 드러내놓고 반감을 드러냅니다. 특히 사두개인들은 내세보다 현세를 강조하다보니 마침내는 "부활"까지 중요치 않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현세에서의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강조하다보니 현세에서 힘을 얻는 것에 주력했고, 그 결과 경제, 정치, 종교에서 큰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두개인들은 성전맡은 자와 성전관리자들과 함께 다니며 제자들의 가르침을 반대하고자 했지요. 특히나 남자만 5천명, 가족단위로 하면 2만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가 된 판국이니, 성전으로 하는 자신들의 힘이 꺾일까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제자들을 옥에 가두고야 맙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입을 막고자하여 공개적인 곳에서 압박을 가하려 유대인들의 대법원과 같은 공회를 열게 됩니다. 5-7절입니다. 

5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6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7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유대교에서 한 자리씩 하는 대표자들을 다 모아 사도들에게 묻습니다. 질문을 보십시오.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보통 이정도 규모의 공회가 열린다면 "종교적으로 드러날 정도의 큰 양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아무것도 해석하지 못한채로, 그냥 사도들의 입을 막고자 그들을 가두어놓았기에 질문 또한 두리뭉실합니다. 쉽게 말해 잘못했다고 옥에 가둬놓고 그들을 향해 "너희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꼴인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신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나는 중심에 무엇이있는지 실토하라는 겁니다. 그들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비인격적으로 임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이해, 감정, 상황, 배경을 감안하여 우리가 친밀하고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도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내 음성을 드고 문을 여는 자마다 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도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2)고 하셨습니다. 오로지 이해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말씀하신 적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비유입니다. "13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13:13) 오로지 하나님과 교제하려고 친밀하게 다가오시는 하나님께 겸손하게 다가오는 자에게 들을 수 있도록 하시지만, 오로지 자신의 처지와 환경, 유익, 욕심으로 가득 차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깨닫지 못하게끔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지금 종교지도자들이 그러합니다. 분명하게 드러난 예수의 부활, 성령강림, 앉은뱅이 치유 사건 속에서 오로지 그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이에 배드로가 설명하고자 합니다. 8-10절입니다. 

8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10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결코 자신의 개인적 능력이나 경건의 모양임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예수의 이름"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에 대한 설명을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의 이름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설명하는 겁니다. 예수라는 한 인간이 죽었는데, 그 앞뒤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 죽음을 통해 인류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고, 두 번째로 하나님과 다시 연합하게 되었으며, 세번째로 왕이 될 자로써 "다스릴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시대가 되었음을 알리는 표징으로써 앉은뱅이가 "예수의 이름"을 믿었더니 일어날 수 있었고 건강하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것이라고 해설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것은 주문이나 부적이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도의 내용도 새로운 시대에 걸맞아야 합니다. 다스리는 자답게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과 연합한 자답게 말해야 하고, 죄와 사망을 뛰어넘을 자로써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먹고 입을 것을 위해 기도하거나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지금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먹을 것과 입을 것, 즉 돈에 매여서 아직도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11-12절입니다.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베드로는 종교지도자들이 버린 돌을 가지고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고 천국을 만드셨음을 말해줍니다. 이만한 다른 돌이 없을 정도로 예수라는 돌은 종말과 천국의 도래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이름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신앙이 혹시 나라는 이름을 떠받들기 위해 사용되는 것은 아닌지, 내 행복과 안정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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