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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사도행전_따라가는 길

행3:1-10

by 우루사야 2023. 7. 10.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령강림에 대한 베드로의 해설이 끝나고 그는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의 일상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실 때 그는 예수를 부인했고, 예수가 죽었을 때 그는 제자들을 데리고 어부생활로 돌아갔었습니다. 예수가 부활하셨을 때에도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있다가 여인들이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전해주니 그제서야 무덤으로 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예수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가까이 또 가장 믿을만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령강림으로 변화된 베드로를 확인해보시죠. 1-3절입니다. 

1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2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3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일이 일어난 것은 오후 3시였습니다. 저녁제사를 앞두고 유대인들은 성전으로 들어가 기도하곤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그렇게 성전으로 기도하러 올라가면서 앉은뱅이를 만나게 됩니다. 앉은뱅이는 선천적 장애를 가진자로써 마흔살이라고 성경은 말해줍니다. 고대 기대수명으로 계산해보고 또 앉은뱅이가 구걸한다는 상황을 보면, 앉은뱅이에게 구걸은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해주는 것으로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나마 목이 가장 좋은 곳으로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성전 출입구 중 하나인 미문"에 앉기로 합니다. 그에게 성전은 "생계를 위한 벌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앉은뱅이는 또 다른 성전을 만나게 됩니다. 성령강림으로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있었던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앉은뱅이는 건축물로써 성전에 기대어 앉아서 진짜 하나님이 안에 거하시는 성전으로서의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아직까지 앉은뱅이에게 건축물 성전은 많은 유대인들이 모이게 해주는 번화가일 뿐이었고, 성령을 모시는 성전으로써 베드로와 요한은 적선해줄 유대인 중 한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에게 "더 나은 삶이라곤 구걸해서 얻어낼 돈"으로 밖에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4-6절입니다. 

4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5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얼마나 주려고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한계는 거기까지 였습니다. 아무리 성전이 멋지고 화려하더라도 그것은 번화가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회개하는 자와 은혜로 감격하는 자가 나타나도 자신에게는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그였습니다. 그에게 "더 나은 삶"은 오로지 "돈"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눈과 영혼이 더두운 그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이라는 돈은 필요없다. 당신에게도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베드로와 요한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보라" 여러분, 구걸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세상다 꺼져가는 한숨을 쉬면서 최대한 낮은 자세로 엎드리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여 "돈을 담는 그릇모양"으로 자신을 만들 뿐입니다. 동전 몇 푼을 담을 깡통으로 자신을 만드는 것이지요. 베드로는 그런 그에게 고개를 들고 "나를 보라!"라고 말하는 겁니다. 자기자신을 깡통으로 만들지 말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보라는 겁니다. 왜요?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베드로는 앉은뱅이라는 사람이 깡통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앉은뱅이 자기자신도 자기 스스로를 깡통으로 여기고 있어도, 베드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람으로 보였고, 성령 하나님의 전으로 보였고, 하나님의 자녀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서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지요. 

여기서 우리는 조금 더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주겠다고 말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네,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두고 마치 베드로가 성령을 비인격적 존재, 신비한 능력을 전수하거나 전해주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령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지금 베드로는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앉은뱅이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전해질 때에 조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의 이름을 믿는가"였습니다. 예수님도 치유사건을 일으키실 때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실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네, 베드로가 준 것은 "예수에 대한 믿음과 성령의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다만 아무나 병자를 붙들고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지요. 쌍방간에 예수에 대한 동의와 믿음, 그리고 그 속에서 소통하는 성령의 능력이 이뤄질 때 "천국에서 일어날 일"이 이 땅 가운데서 일어나 천국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7-10절입니다. 

7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9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10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이에 천국에서 일어날 일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납니다. 앉은뱅이가 기적적으로 일어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보며 놀랍니다. 성령이 강림하여 제자들이 난 곳 방언으로 말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천국이 만들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할 뿐이고 해석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시고 있는 베드로는 변화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서 천국을 만들어가는 그의 행보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증인의 삶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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