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령강림을 상상하지도 또 이해하지도 못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베드로는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3절을 보시죠.
33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인류를 섬기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높이시는데, 오른손으로 높이십니다. 즉 모든 창조물의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에게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하게 해주셨고, 예수는 그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파송해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제자 공동체에게 이와 같은 신비한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삼위 하나님이 모두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홀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서로 섬기고, 서로 사역하시고, 서로 사랑하시며 사역하십니다. 마치 성령을 비인격적이거나 물건처럼 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또는 예수를 하나님이 부리는 노예처럼 생각해서도 안되겠습니다. 지금 세분은 서로를 섬기고 계십니다. 그렇게 섬기는 이유는 "우리를 구하기 위함"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34-36절에서 베드로는 다음으로 일어날 질문에 대해서 미리 답해줍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왜 예수라는 인간이 성령이라는 하나님을 보낼 수 있는가? 왜 성부 하나님은 예수를 2인자의 위치로 격상시키셨는가? 이러한 질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신성모독"처럼 느껴집니다. 교주를 신처럼 받드는 이들을 바라보면 우리 안에 어떤 생각이 들까요? 그 감정과 생각이 지금 유대인들이 드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러한 과정이 "성경에서 미리 약속 된 것"이라고 계속해서 설명해주는 것이죠. 베드로는 다시 한번 다윗의 예언과 약속을 소개합니다.
34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35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36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다윗은 천국에 가보지도 않아놓고 이런 예언을 한 것입니다. 삼위하나님의 체계와 대화에 대해서 예언한 것이지요. 보니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말하시기를 "원수 사탄마귀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릴 때까지 오른편, 성부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는 자리에 있으라"고 하셨다고 다윗은 말했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에게 다윗은 왕이자 선지자였습니다. 가장 권위있는 메시지를 후손들에게 준 자라고 여기고 있지요. 그런 다윗이 왜 이런 예언을 했겠느냐, 지금 예수 그리스도에게 꼭 알맞는 메시지 아니냐! 라고 베드로는 설명해주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예수를 낮은 자리로 보내시어 죽게 하셨지만, 또 높이셔서 가장 높은 자리로 올리시어 성령 하나님을 보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은 요엘선지자와 다윗을 통해서 얼마든지 약속되고 예언되었던 사실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교만"입니다. 내가 상상할 수 없거나 생각할 수 없으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내 한계에 하나님을 가둬버리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구원사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고 듣고 이해하면 감격할 그 일들이 지금 우리 주변 나의 가족과 이웃들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도저히 용서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용서하는 이웃이 나타나고, 내 생각에는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예수를 찾게 되어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따라갈 수 있는 겸손한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37-39절입니다.
37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39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사람들이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그 어떤 조건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증인으로써 경험한 것, 한가지였습니다. "회개" 즉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질문이 듭니다. 이들은 경건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말씀대로 살아오려고 노력했던 자들인데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 것일까요? 즉 자신의 교만, 제멋대로 성경을 해석해버림에 대한 양심의 가책, 사실로 드러난 것에 대해 애써 부인하려고 했던 자신의 과거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이제 드러난 사실을 받아들여 "세례"를 받으라고 말해줍니다. 이 세례는 "기독교인"이 되라는 절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전까지 동물제사로 죄씻음 받는 시대가 끝나고 "예수의 희생"으로 "완전한 죄씻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의 선물"을 받아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가 되라고 베드로는 말해줍니다. 회개 하나로 이렇게 어마어마한 영적인 선물들이 주어지는 것이죠. 40-41절입니다.
40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41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본문인 것 같습니다. 본문이 설명하는 하나님은 나를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 죄씻음을 주시는 하나님, 성령의 선물로 가득히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나의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해줘야 하는 하나님, 지금 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해결해주셔야 하는 하나님으로 치부해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미 나에게 주실 것을 모두 주신 하나님을 두고 "하나님이 하신 일은 불완전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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