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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사도행전_따라가는 길

행 2:1-13

by 우루사야 2023. 7. 4.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기다렸던 성령 하나님의 임재가 이뤄지게 됩니다. 사실 제자들은 그 전에도 하나님의 뜻이 담긴 성경의 약속을 따르고 있었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만해도 굉장히 좋은 신앙심을 가지고 살아가는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령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시며, 그들의 내면에 성령 하나님이 계시게끔 하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오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4절입니다. 

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3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강림에 대한 배경은 주일설교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어제와 같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2절을 보실까요? "홀연히"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는 겁니다. 누군가 의도하거나, 준비하고 있었거나, 점점 알아차리고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일이 일어나서 각 사람에게 성령충만이 임하도록 하셔서 이뤄내신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 즉 하나님을 따라 말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뒤를 돌아볼 때 간증거리가 있으면 어떻게 고백합니까? "하나님이 하셨었습니다. 그건 결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아닙니까. 네.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는 고백하게 됩니다. 지금 성령강림으로 제자들은 자신들의 말이 아니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위하나님께서는 구약성도와는 질적으로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위해서 임하시어서,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더 잘 따를 수 있도록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비인격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각 사람의 인간성을 무시한 처사도 아니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제자들이 있는 집에 가득히 임하시되 "각 사람에게 각각 임하시어 그 사람의 마음에 어울리게끔" 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은 동일하시기에 그 일을 하실 때의 하나님과 지금 하나님을 동일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부 하나님의 창조,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 구속과 부활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강림 또한 동일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특히 성령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각 사람에게 맞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각 사람의 마음, 언어, 배경, 환경, 생각, 감정 등에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오신 것이지요. 너무나도 신비해서 인간으로서는 결코 따라할 수도 그렇다고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습니다. 5절과 12-13절을 볼까요? 

5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12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13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성령으로 충만한 제자들을 보면서 주변에 있던 유대인들은 놀라고 당황하며 이 상황에 대해서 해석하지 못합니다. 경건한 유대인들, 즉 절기에 맞춰서 예루살렘에서 제사드리기 위해 모인 자들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자들도 있습니까? 몇 개월 2-3개월 전에 무리에게 선동되어서 "강도 바라바를 놔주고, 예수를 죽이라"고 했던 이들 아닙니까? 이들이 또 선동되어서 제자들을 조롱하며 술에 취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경건한 유대인, 무리에게 선동되는 유대인 등 모였습니다만, 같은 인간으로써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을 해석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현대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교회의 부흥 또는 타인의 부흥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욕하고 비방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이단이니, 잘못된 것이니 등으로 말이죠. 그 전에 과연 자기자신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돌아보고 있었는지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 부흥이 진실된 것인지를 해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공동체에도 "순수한 신앙"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떤 부흥이 일어났는지 볼까요?

특히 8절에서는 '8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각 지방의 "본토어"들이 들리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한두가지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먼저 동쪽지방언어입니다. "9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그리고 북쪽언어입니다.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10브루기아와 밤빌리아" 그리고 남쪽 언어입니다.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그리고 아라비아도 말해주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서쪽지방입니다.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11그레데인과" 이렇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고대 문명으로써의 가장 중심지는 다 거론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각 언어로 무엇을 듣고 있습니까?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이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들은 메시지는 "하나님의 큰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가장 큰 일을 성경에서 꼽으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시어 배신자 된 인류를 회복시키고자 예수를 보내어 대신 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셨고, 죽으셨고, 그러나 부활하시어 인류가 부활하여 예수와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을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만방에 이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메시지가 전해질 때에 듣는 자들의 상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6-7절입니다. "6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7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가장 덜 발달되고 종교적 혜택이 전무후무하며 교육적으로도 미달된 갈릴리 출신의 사람들이 외국어로 하나님의 큰 일들을 말합니다. 그것도 유대교의 중심지 예루살렘에서 말이죠. 그러니 이들은 자신의 이해로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네, 하나님의 주권은 자신의 이해와 주장, 경험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따라 가겠다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뒤따라 순종하겠다는 제자들에게 이 일은 이해가 되게끔 성령 하나님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신자이면서도 아직도 내가 그리는 하나님, 내가 정도껏 하고 싶은 신앙수준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여러분의 고집과 아집입니다. 성경은 결코 "내가 만든 종교, 나만의 언어로 설명하는 종교"를 가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성령 하나님께서 각종 난곳방언으로 말하게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말할 바를 알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게 내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일"을 지금도 말씀하고 깨닫게 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믿으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감동으로, 구원역사에 동참하시며 서로 사랑하러 나아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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