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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가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날마다 샘솟는 샘물 본문을 따라갑니다. 로마서 7장 13절입니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이전까지 율법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때문에 13절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때문에 우리가 사망을 당하는 것입니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망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바로 "죄"입니다. 율법은 죄가 죄됨을 드러나게 해줄 뿐이지, 율법에 사망의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반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고 부연 설명을 이렇게 합니다.
13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심으로써 우리가 죽을 죄인인 것을 드러나게 하신 것이지, 율법으로 스스로 구원을 얻어내라고 주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 갈 수록 "죄가 더 죄가 되듯이, 죄인은 더 죄인이 됩니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이 일반적인 스승인 줄 알았지만,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체험한 후에 그의 고백은 무엇이었습니까?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5:8)
살려주려고 베드로에게 간 예수님인데, 베드로는 자신의 죄가 드러나고 죽을까하여 떠나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 율법의 신성함은 우리의 죄를 더 드러나게 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함이 필요합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인자함을 받을 수 있는 구원의 길에 대해서는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초등교사, 몽학선생일 뿐입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만을 말해줄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율법이 죄가 죄인 것을 말해준다면, 반대로 율법은 의로운 것은 의롭다고 말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율법으로 인해 죽게 됩니까? "죄에 빠진 육신에 속한 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 아래에서 팔린 노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누군가 우리를 다시 "값을 치르고 사주어야" 합니다. 죄값을 치뤄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께, 신령한 율법에, 그리스도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다시 율법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시다. 율법 앞에 서게 되면 죄가 더 도드라집니다. 예수님 앞에서 베드로가 그러했던 것 처럼 말이지요. 우리가 베드로였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이 사람에게 가까이 가면 나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그에게 가까이 가게 되면 나의 죄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령한 하나님의 법에 가까이 가고 싶습니다. 구원의 문제로 다가서고 싶습니다. 문제는 율법에 가까이 가면 내가 죄인인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 외에 다른 의로운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죄 아래 팔린 노예의 상태가 아니라 율법에 가까이 가서 "의로와질 수 있는 상태로의 전환"이 필요한 겁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율법 앞에 있는 죄인은 선을 추구하고 싶지만 죄만 드러날 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같이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그 분이 필요한데 떠나달라고 하게 됩니다. 좌불안석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됩니다. 바울도 15절처럼 말합니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내 심령에서 움직이는 죄와 죄를 떠나고자 하는 선함이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나의 죄된 자아가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5절 하반절에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서 16절처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즉 내가 결국은 나 스스로 의지를 제대로 활용하여 선을 행하고 싶어도 그것을 행하지 못하고 죄를 행하게 된다면,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율법이 나의 기준이 되어주는 것이 맞다고 인정하게 된다는 겁니다. 나는 율법이 없이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자라는 것이지요. 나는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인 것을 인정하고, 율법이 선한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 앞에서 악한 나 또한 인정하게 됩니다.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바울은 자신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의 원인을 자신 안에 있는 죄, 율법에 가까이 갈 수 없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원인인 죄가 있음을 실토합니다. 이 죄 때문에 본인이 율법에 반하는 것을 행하게 되며, 미워하게 되며, 분노하게 되며, 탐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죄는 바울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바울도 자신이고,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하는 죄를 발생시키는 것도 바울 자신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18-20절과 같이 말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워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이렇게 하라는 명령만으로는 우리가 선해질 수가 없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명령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명령을 지키지 못하는 것까지 아시고 우리를 다시 일깨워주시고 선한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시고, 우리 심령에 선함을 창조하시고, 새마음을 주사 율법을 즐거이 지킬 수 있도록 하실 우리 마음에 선한 창조를 시작하실 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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