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17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
18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
19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20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21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22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23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 앞서서 일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의 안전, 보호,구원을 위해 역사하셨습니다. 태초 전에 우리를 계획하셨던 것처럼, 출애굽 때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처럼, 우리가 살펴보는 요나단 앞서서 블레셋 진영에 이미 역사하셨던 것처럼 말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단이 호위병사 한명만 데리고 블레셋 진영에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이미 하나님은 블레셋 진영에서 역사하고 계셨고 두려움과 혼동을 주고 계셨습니다. 거기에 요나단이라는 믿음의 불꽃을 사용하셔서 드디어 전쟁을 끝내시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은 미리 역사하고 계십니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불꽃같은 믿음이며, 그 믿음의 순종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드높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그런 주님을 믿으며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6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17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에서 싸우며 이기는 모습을 정찰병이 사울에게 보고하게 됩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서 흩어지는 형세"였습니다. 그때서야 사울은 요나단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저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항상 믿음으로 충만하여서 용기가 가득할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사울처럼 두려워하며, 눈에 보이는 상황에 흔들리며 주저하게 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며 기다리며 마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감정이 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혼란스러운 내 분별력으로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석류나무 아래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분별하고, 자신이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아니면 눈 앞에 있는 상황에 묻혀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지 못한지를 분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분별력조차 잃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궤와 에봇을 입은 제사장을 "주술적"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18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19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우리는 4장에서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갔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사울도 궤를 부적처럼 사용하기 위해 가지고 나왔고, 제사장을 불러세워 점을 치고자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나단과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나단은 블레셋에게 이기는 것은 사실화하면서 하나님께 표징을 구했습니다. 이 전젱을 지금 끝내시려는지 아니면 좀 더 후에 끝내시려는지를 말이죠. 그런 점에서 요나단은 "승리하는 전쟁"을 믿음으로 이미 고백하고 있음으로, 지키고 계시는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반면 사울은 처음에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게 한 다음에 "블레셋 진영에서 소동이 점점 더 심해지는 긍정적 상황"이 되니 제사장에게 "손을 거두어라" 즉 하던 일을 멈추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기에 긍정적이니 주술적이더라도 하나님께 묻는 절차를 생략하겠다는 것이겠지요.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경험으로만 살아가는 사울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울에게 하나님은 부수적인 존재 또는 절차였던 것입니다. 일단 내가 해보고,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쥔 다음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죠. 그 말은 하나님이 결코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신앙심이 결코 내 인생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그의 마음의 증거입니다. 우리도 조금 불안하며 기도를 하고, 뭔가 찜찜하면 헌금을 더 하거나 예배를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도 상황이 나아지면 금새 열심을 내려고 했던 신앙생활을 잃고야 맙니다. 가짜 신앙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신앙은 내 마음의 근간이 되게 하는 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내 중심에 둠으로써 내 생각과 행동의 출발점이 되게 하는 것이지요. 요나단은 미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여호와의 일은 사람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말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요나단과 호위병사 두사람만을 통해서 블레셋 진영을 "크게 혼란케" 하셨습니다. 20-22절입니다.
20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21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22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적군이 크게 혼란한 것을 넘어서서 배반을 하며 블레셋 진영으로 갔던 히브리 사람들이 돌아와 요나단과 함께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보고 사울과 같이 두려워하며 도망갔던 이들이 용기를 내어 합세하여 함께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사울이 암몬과 싸울 때가 기억나게 됩니다.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하여 소를 조각내 온 이스라엘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각 지파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으로 모여 사울과 함께 전장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까? 지금 그 일이 사울이 아니라 요나단에게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는 자는 왕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울이 아니라 그의 아들 요나단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전선이 "벧아웬을 지나"가게 됩니다. 블레셋 군사들이 후퇴한 것이지요. "23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은 지키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이 세우신 신자의 가정, 하나님이 세우신 신자의 기업과 사업체, 하나님이 세우신 신자의 일상과 관계 모두 하나님이 돌보고 이끌고 계십니다. 참새 떨어지는 것조차 돌보시는 하나님,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상황을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하나님이 계신다는 믿음에서의 판단, 결정, 충성, 절제, 인내이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강해설교 > 사무엘상_천국을 다스리는 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상 14:36-46 (0) | 2023.03.22 |
---|---|
삼상 14:24-35 (0) | 2023.03.21 |
삼상 14:1-15 (0) | 2023.03.17 |
삼상 13:16-23 (0) | 2023.03.17 |
삼상 13:8-15 (0) | 2023.03.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