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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사무엘상_천국을 다스리는 자

사무엘상 13:1-7

by 우루사야 2023. 3. 15.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간 사무엘과 사울이 보여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섬김과 희생, 질서로 가득찬 모습으로 우리가 보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백성들 또한 사무엘의 고별사 앞에서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상으로 왕을 세운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이제 새나라로 나아가면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기대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나타나는 성경의 메시지는 다릅니다. 사울이 백성을 두려워할 줄 알며, 사무엘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고자 하는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3절입니다.

1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2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3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4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사울이 이스라엘왕이 된지 두번째밖에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원수로 등장하는 블렛셋과 전쟁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울은 군사 3천명을 거느리며 자신이 2천명, 아들 요나단에게 1천명을 통해 이스라엘 군부를 이루고 있었는데, 요나단이 블레셋과 작은 전투를 하게 된 것이었죠. 그리고 이것은 나라대 나라로의 전면전으로 커지고야 말았습니다. 5-7절입니다.

5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6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7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블레셋의 규모가 너무나도 컸습니다. 이스라엘은 고작 3천명의 군사이지만, 블레셋은 몇배에 달한다고 말하기도 부족할만큼 거대한 군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벌써 전투에서 패배한듯이 보일정도로 시작하지도 않은채로 분위기가 블레셋 쪽으로 기우는듯이 보입니다. 사람의 진짜 모습은 이런 순간에 찾아옵니다.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무엇을 보여주는가가 자신의 진짜 모습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신앙훈련으로 금식을 하거나, 광야로 나가곤 했습니다. 나 자신을 위기에 내모는 것이지요. 물질적인 것이 끊어졌을 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이 끊어졌을 때 진짜 나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지요. 그 순간에 나타나는 나의 모습을 직면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그 모습이 다듬어지기를 말씀과 기도로 다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꼭 며칠씩의 금식과 광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더 사소하게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간이 그러하고, 세상적 사고를 멈추기 위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 그러합니다.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은 그런 점에서 "시간이나 페이지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본문으로 돌아와 두려움 앞에서 사울도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문제는 사울이 평소 다듬어지지 못한 영성으로 인해서 두려움 앞에서 불순종하고 제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모습을 바로 보이고야 만 것입니다. 특히 사무엘은 항상 사울에게 "기다릴 것"을 당부했습니다. 기름부었을 때에 사울은 7일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잘 기다려왔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7일 안에 사울을 통해 "암몬에게서의 승리"를 겪게 하셨고, 그 기다림 속에서 사울은 진정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방식이지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사울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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