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제에 이어서 엘가나와 한나 이야기를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다스릴 자에 대해서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그간 가나안 정복전쟁에서나 정착하면서 12지파에게 배분할 때에나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엘가나는 자신의 혈통으로 하나님의 뜻을, 그리고 불임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멋대로 첩을 두어 하나님의 뜻에 끼워맞쳐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사명을 주셨다면 하나님이 힘도 주십니다. 그래서 기다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가정에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모습은 엘가나보다 여인 한나에게 보입니다. 인간의 방법을 더 의지했던 엘가나는 뒤로 빠지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던 한나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지요. 레위자손이고 고핫자손이면 무얼 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9절을 보니 "9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 사람이 더 등장합니다. 엘리라는 제사장이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엘리가 조금씩 등장합니다. 종교 중심부에 있는 엘리와 엘가나 남편. 두 사람은 여호와의 전에 가까이 있지만, 하나님과는 멀었던 사람으로 점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본문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한 사람의 기도에 주목합니다. 10-11절입니다.
10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11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애통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지요. 한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애통했다면, 엘가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니 인간의 방법으로 대체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될까요? 네. 한나는 마음의 애통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되겠지요.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해결책이라는 은혜가 내려지는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약속하기를 아들을 주실 때에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릴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한나가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서 아들을 구하며 하나님과 기브앤 테이크를 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고대사회에서 자녀의 유무는 "생활의 유지"와 연관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한나에게 자녀는 "구원의 손길"이 되어줍니다. 그런 점에서 한나는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애절한 마음의 기도를 한나는 드리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반과부가 된 한나와 비교가 되는 엘리가 등장합니다. 12-14절입니다.
12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13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14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영적시야가 닫혀져있는 엘리는 한나의 기도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합니다. 특히 고대이스라엘의 기도법은 소리를 내서 기도하기 때문에 소리내지 않고 들끓는 가슴으로 기도하는 한나의 간절함을 그는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술에 취해서 나아온 줄로 알았던 것이지요. 네, 세상사람들이 교인들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제정신으로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이나 최선을 다해 기도하는 모습, 긴 시간 동안 은혜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라고 하지요. 네. 술 취하지 않고서는 세상인들은 할 수 없는 행동 느낄 수 없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간절함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술취해서 이렇다고 단정지어버립니다. 영적시야가 닫혀진 상태인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지금 나는 무엇으로 취해있는지 아니면 성령으로 충만한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했고, 바울은 "술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제정신으로 성령과 인격적인 관계 안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것에 취해서 또는 정신이 팔려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영적시야가 닫히지 않도록 나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엘리 제사장이 오히려 틀렸음을 성경은 지적하는 본문을 소개합니다.
15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16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그녀는 포도주나 독주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심정을 나눈 것임을 밝힙니다. 하나님 앞에서 원통과 격분을 내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시야가 닫힌 자는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원통함과 격분됨을 내놓지도 않습니다. 엘리는 영적시야가 닫혀서 열정의 기도를 술취함으로 밖에 보지 못했고, 엘가나는 하나님이 임신을 막으신 것을 하나님 앞에 원통과 격분으로 기도하지 않고 첩을 두어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시야에 눈을 뜨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소그룹 안에 있는 위대한 자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확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내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의 계획과 구속사 안에 있음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한나는 그 원통과 격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해결을 해도 하나님과 해결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해결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멈추신다면 멈추신 이유가 있고 나아가신다면 나아가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에 엘리와 한나의 오해있던 만남이 해결됩니다. 17-18절입니다.
17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18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한나는 이 기도를 통해서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습니다.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우리가 명확하게 지금 알 수는 없지만, 기도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다스림을 알게 된 것이지요. 이것이 사실 필요했던 것이 엘리와 엘가나였습니다. 그들이 한 도시와 가정의 영적지도자들로써 눈을 뜨고 있어야 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지 못하니 반과부인 한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은혜를 거절하는 자들에게 억지로 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거절하고 있다면 너무나도 비참합니다. 부디 은혜에 눈뜰 수 있기를,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현장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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