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오늘도 성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선물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라고 말합니다. 최고의 선물을 받았으면서, 다른 선물을 구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달라고 한다는 것은 선물을 이미 준 사람에게 어떤 뜻을 전달하는 겁니까? 당신의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요.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게 이같은 꼴이라고 지적해주면서, 지금 이미 받은 선물포장을 끌러보아라!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말하라고 말하는듯 합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사용해보면 해볼 수록 다른 선물을 구할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 선물을 잠깐 가져보고서 다시 눈을 돌렸다, 써보지도 않고서 말이다!"라고 질타합니다. 본문을 살펴보죠. 바울은 굉장히 강한 어조로 1절과 같이 말합니다.
1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와 목적, 그로 말미암은 구원의 은혜를 확인했다며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눈 앞에 보면서도 거짓형제들에게 속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강한 질타로 '어리석다!'라고까지 표현한 것이지요. 어떻게 눈 앞에 보고 있으면서도, 속을 수 있을까요? 서울에 가면 눈 뜨고 코베간다고 말하죠. 작정하고 속이려 들면 눈뜬채로도 사기당할 수 있다는 표현이죠. 즉 눈 뜨고 안뜨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이미 둔해져있으니 속아넘어가는 것이지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가 내 눈 앞에 있고, 은혜받는 현장이 내 앞에 있어도, 내 옆 사람이 은혜받고 기적이 일어나고 있어도 여러분의 마음이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은혜는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2-4절입니다.
2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4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바울은 가장 중요한 것 한가지만 묻겠다고 합니다. 성령을 받게 된 것이, 즉 내 안에 하나님이 내주하신다고 믿게 된 것이 과연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냐고 묻습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을 바울은 던지고 있습니다. 신앙의 목적과 도착이 어디입니까?천국입니까? 복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점집이나 타종교에도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그곳이 천국이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때 복을 받고 생명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무엇으로 얻게 되었는지 아는대로 말해보라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비신자나 불신자의 경우가 아닙니다. 지금 갈라디아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님으로 강림하심을 믿고 확인하고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성령님이 지금 자신 안에 계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 때 그들이 행한 것은 율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즉 자신이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성령님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바울의 복음을 들음으로써, 그 현장에서, 깨닫게 된 것이지요. 게다가 5절에서 보니 그들은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써 "천국을 맛보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까지 했습니다."5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여러분.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시는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셨다면 신앙생활을 돌아보십시오. 신앙을 어떤 메뉴얼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이 아닌지 말이죠. 또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지금 하나님과 관계가 소원하거나 신앙의 열심이 식었다면 돌아보십시오. 예전에 은혜받았던 그 틀 안에서 내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죠.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간관계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 형식적으로 만나면 관계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하고 서로를 알아가야 합니다. 또 그렇게 알아갔다 하더라도 만나면 만날 수록 신뢰와 정이 쌓여야 하는데, 한 번 만나고 더 이상 만남이 없다면 그 관계는 그렇게 식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곧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인생, 뜻, 의도를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나의 말과 행동, 판단, 결정에 예수의 인생을 넣으십시오. 그렇게 점점 예수와 교제하다보면 인격적으로 만나고,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율법과 같은 메뉴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믿고 신뢰하고 정을 쌓고 사랑하는 가운데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에게 구약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가장 유명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6-9절입니다.
6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구원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을 맺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어떤 것도 구하지 않으시고, "네게 복을 줄 것이다"라고만 하셨습니다. 그것을 믿은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과 함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두고 하나님은 그를 의인이라고 칭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된다고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피가 섞이지 않은 이방인들을 멸시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벽을 더 높이 세우기 위해서 율법을 첨가하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만이 가지는 특색과 문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신들만의 천국을 스스로 만들어갔던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고 따르기만 했기에 구원이 주어졌고, 그 방식을 아브라함의 자손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그 이웃들에게 전해져 그들도 따른다면 이웃들까지도 구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울은 언급하는 것이지요.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메뉴얼로, 또는 내 옛경험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계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분은 여러분 안에 살아계시고, 여러분의 천국자리를 준비하고 계시고, 여러분의 인생을 섭리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과 교제하며 오늘 하루도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