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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갈라디아서_다른 복음은 없나니

갈 2:17-21

by 우루사야 2023. 1. 6.

17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오늘도 성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제에 이어서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이 믿는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특히 자신이 겪었던 일화들을 소개했던 것에 대한 결론을 짓고자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를 만났던 기억, 그리고 복음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기 위해서 아라비아를 갔던 것과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던 것,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출신 사도들과 자신의 멘토인 바나바의 비복음적인 행태들을 보일 때 비판했던 것을 소개했습니다. 자신이 믿는 복음이 삶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소개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모두 "율법을 초월하는 인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의 신앙 가운데 여러분이 설정해놓은 "구원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간다고 믿고 계십니까? 헌금생활 입니까? 주일성수입니까? 바울이 말하는 것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믿음"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내 안에 예수가 살아계시고, 성령이 그것을 증거해주고 있으며, 그래서 내 인생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계획을 살아내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2장을 마무리하면서 자신도 그러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살펴보죠. 17-18절입니다.

17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18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19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율법은 거울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주는 것이지요.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우리가 죄인임을 드러내주는 신앙규칙입니다. 저 조차도 좀 쉬고 싶고, 내 것을 더 가지고 싶습니다. 십일조를 마련할 때마다 이 돈을 생활에 보탠다면 더 여유로와질텐데, 일주일에 하루를 교회에서 보내기보다 좀 쉬면 여유로와질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며 "나는 스스로는 결코 온전한 신앙인이 될 수 없구나, 하나님을 고백하는 자가 스스로는 될 수 없구나" 돌아보게 됩니다. 그럴때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 도우심은 "십일조를 드리기 싫어하고, 주일성수를 하기 싫어하는 나에게 이미 구원을 허락해주신 하나님"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것을 알려주러 예수가 오셨고,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이지요. 십일조와 주일성수를 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내가 부족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더 극명하게 드러내 줄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1. 그럼에도 더 열심히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신 구원, 자격이 없는데도 주신 구원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자신이 열심히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니까 그에 맞는 구원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던 벽을 예수가 헐었던 것을 인간이 다시 세우는 꼴이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선물을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2. 오히려 우린 주일성수와 십일조 안에서 나는 하나님께 예배와 헌금 조차도 온전하게 드릴 수 없는 사람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그 사람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십니다. 스스로 할 수 없어 도와달라는 아이를 하나님은 도우시지, 자신이 어른인 것 마냥 행동하는 교만한 이에게 도움은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0-21절과 같이 삶을 누려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1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율법을 보며 죄인임을 깨닫던 우리가 더이상 자책하지 않도록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셔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십일조와 주일성수로 인해서 책망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예수가 내 안에 있음으로 십일조 외에 더 헌금하게 됩니다. 주일성수 외에 일상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내 안에 기쁨과 생명을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 안에 계셔서 그 분이 이뤄놓으신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죄를 책망하던 율법을 뛰어넘게 되었고, 율법의 완성이 되시는 예수의 삶을 살게 되었기에, 믿음이 있는 견고한 삶을 살게 되어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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