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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갈라디아서_다른 복음은 없나니

갈 3:15-22

by 우루사야 2023. 1. 11.

15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19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오늘도 성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계속해서 갈라디아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어제 바울은 굉장히 강한 어조로 갈라디아교회를 질타했습니다. 아무조건 없이 선물을 받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누리고 생명과 복을 누렸던 그들이었기에, 다시 인간의 본능으로 돌아가 구원을 노력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이 어리석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그래서 우리는 항상 누리고 있어야 합니다. 일상 속에서, 말씀 속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동행하심 안에서 선물을 주고 계시는 하나님을 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더 심각한 것은 신앙공동체 안에 있긴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정보만 듣는 겁니다. 교제 없이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15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사람끼리의 예절, 질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약속을 함부로 파기하거나 수정할 수 없습니다. 그럴려면 상대방과의 굉장한 갈등을 갖게 되거나, 계약파기로 인한 위약에 해당하는 금액 또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약속이라는 것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러시겠냐는 것입니다. 사람도 이렇게 약속을 귀하게 여기거늘, 하나님은 더욱 신실하게 약속을 하시고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이지요. 17절입니다. "17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이 될 것이고 이방에게 전하게 될 것이다"라는 약속을 주셨고,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을 받게 되었죠. 이렇게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는 어떤 선행조건이나 수행조건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그에 따른 순종으로 이 계약이 체결되었죠. 그리고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까지 전해지는 것이 약속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들, 유대인들은 이 약속을 있는 그대로 받지를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행조건, 수행조건을 만들어냅니다. 믿음이 아니라 "결과물"로 약속된 것을 받으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관계로 되는 것인데 말이죠.

우리가 죄인이라는 증거 중 하나가 "순수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사랑한다는 순수한 의도만을 가지고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어도,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왜곡하고 맙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자녀가 상대방의 호의에 대해서 건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하고 호도하듯이 말이죠.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죄로 인해서 거절하며 자라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하고 변질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 지키고 스스로 속박시키고 무언가 해내야만 사랑받을 것이라는 착각을 합니다. 그렇게 율법을 왜곡시키고, 주일성수를 왜곡시키고, 십일조를 왜곡시킵니다. 하나님이 아무조건없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그 뒤에 사람들이 마음대로 가져다 붙인 율법주의가 훼손시키거나 변경시킬 수는 없는 겁니다. 16절입니다.
"16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 바울은 약속의 대상자가 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하는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합니다. 율법을 가졌던 유대인들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어떤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없던, 누구든 간에 그리스도 한 사람 안에 있는 자는 모두 이 약속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 약속은 결코 훼손되거나 변경된 적이 없습니다. 항상 동일합니다. 그래서 18절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18만일 그 유업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게 복을 줄지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이었습니다. 어떤 것을 행함으로써 복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약속이 주어지고서 430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손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 약속을 변경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약속 관계 안에서 무엇이 잘못인지를 알려주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래서 약속 당사자로 돌아오게끔 하는 보조기구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해서 자신들이 약속 당사자의 위치에서 벗어났음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19-20절입니다.

19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20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직접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보조기구로 율법을 천사와 중보자 모세를 통해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약속을 향해서 살아가는데, 벗어나게 되면 율법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약속과 율법 모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한가지 구별점을 줍니다. 하나님은 약속이라는 선물을 주실 때에는 혼자 하셨습니다. 선물을 주는 입장이니까요. 그런데 율법을 줄 때에는 법을 내리는 것이기에 수여자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전달할 중재자가 있어야 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선물을 주신 것과 법을 주신 것과의 차이점을 알라는 것이지요. 21-22절입니다.
21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22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그냥 약속만 주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편하게 믿기만 해서 복을 받았을테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믿기만 해도 되지만, 인간은 믿지를 않습니다. 선물을 왜곡합니다. 더욱 죄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율법이라는 거울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약속과 율법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우리를 구원의 길로 안내해줍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인류에게 주셔서 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인지 몰랐지만, 법이 생기니 죄라는 것이 더 확실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진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다시 환영해주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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