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가득한지라
10유다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온 것은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하는지라
11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
12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려고 내려왔노라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치지 아니하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하매
13그들이 삼손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넘겨 줄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밧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 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
오늘도 다시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본문에서 삼손은 여호와의 영으로 움직이는 자가 아니라 육체의 욕망으로 움직이는 자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힘을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으로 가득찬 모습. 그간 이스라엘의 이율배반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인 모습이 그대로 삼손에게도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욕망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처음에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며 만족하고 자유로운 인생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허나 점차적으로 그 욕망에 스스로를 가두고 얽매이게 만들어 억눌려있는 자신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담의 선악과 범죄로부터 역사적으로 계속 이어져오는 인간의 반복되는 역사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삼손이 그러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자요 구원자로 이스라엘과 이방땅에 보내진 삼손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죄에 얽매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에 또한 거기서 자유케 해주신 주님의 구속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럼 본문을 살펴보지요. 9-10절입니다.
9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가득한지라10유다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온 것은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하는지라
여기서 3가지 입장이 등장합니다. 먼저는 삼손을 잡으러 오는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안그래도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40년간 괴롭히던 민족이었습니다. 식민지에 가까운 이스라엘인데 그 중 한 사람이 블레셋 사람 30명을 죽였다고 하니 난리가 났지요. 그래서 블레셋은 조직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유다에게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욕망을 욕망으로 그대로 받는 입장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어떤 거름망도 없이 오로지 자기자신이 주인인 자들은 분노를 분노로 받습니다. 시기를 시기로 받습니다. 그 사이에 지혜와 의로움, 질서, 덕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성품들은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인들은 자신들이 연약한 여인을 겁박하거나, 의롭지 못하게 삼손의 수수께끼를 대한 것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동족이 죽은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이제는 피의 전쟁까지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태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롬1:24) 하나님보다 욕망을 더 우선시하는 이들은 자신의 욕망이 우상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욕되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십니다. 유기상태라고 계속 언급드렸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고, 선한 길을 양심 가운데 조명해주어도 결국은 자신의 욕망을 택하는 자들의 말로입니다. 이것이 블레셋의 입장으로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러 유다지파와의 전쟁을 택한 것이죠. 그러니 약소국인 이스라엘, 게다가 블레셋 땅에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유다지파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두번째 입장 유다지파입니다. 11절부터 12절입니다.
11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12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려고 내려왔노라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치지 아니하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하매
강국 블레셋과 삼손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겠는 유다지파입니다. 삼손이 속한 단지파보다 월등한 세력을 가진 유다지파이지만, 블레셋이 무서웠습니다. 게다가 삼손의 괴력 또한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유다지파는 한 사람을 잡기 위해 3천명이 나섰습니다. 그리고 삼손을 질타하는 것이지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에 넘겨주겠다!' 여러분, 지금 유다지파의 이런 발언이 얼마나 무책임한 입장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사기가 시작하는 서두에 사사기의 저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1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2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3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4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삿3:1-4)
지금 이 상황만 보면 삼손이 철부지처럼 벌집 블레셋을 건드려서 이스라엘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질타합니다. 그런데 좀 더 넓게 보니 오히려 유다지파가 블레셋을 향해 싸워야 한다는 사명을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유다지파는 하나님의 뜻을 잊어버린채 자신들의 안위생각으로만 가득차 있는 입장인 것이지요. 예수님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쓸 것을 미리 다 아시는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다지파는 하나님을 알기는 알지만,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는 입장인 것이지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크고 강한 지파가 이지경이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특히 13절을 볼까요? "13그들이 삼손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넘겨 줄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밧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 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 삼손이 두려우니 삼손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블레셋과도 싸우고 싶지 않으니 삼손만 넘겨주려 한다고 말합니다. 사사기에서의 첫사사 옷니엘이 속했고 또 갈렙이 속한 지파. 그 강대하고 담대한 지파의 모습은 300년만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유다지파는 고래 사이에서 등터지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연약한 새우의 모습입니다. 야곱이 유다를 향해 축복할 때 말했던 "사자"의 강대함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삼손의 입장을 보지요. 12-13절입니다.
12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려고 내려왔노라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치지 아니하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하매13그들이 삼손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넘겨 줄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밧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 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
삼손은 유다지파와 싸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지파에게 항변하기를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11절)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꼬일대로 꼬여버려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 된 입장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일이 꼬여버린 가운데 사사기 저자가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음을 말한 적이 있었지요. "4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삿14)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이 구절을 읽을 때는 삼손이 틈을 타서가 아니라 삼손을 통해라고 보셔야 합니다. 즉 블레셋, 유다지파, 삼손 모두 자신의 욕망으로 가득차 상황을 꼬일대로 꼬이게 만드는 그 상황 속에서도, 우리 하나님은 "공의, 정의, 의로움, 선함, 화평, 샬롬"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악함이 판을 치고, 서로를 향한 복수가 넘쳐나며, 자신의 유익만 탐하는 자가 넘쳐나는 간계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많은 여건 속에서 힘들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야에서 들리는 소식들이 참으로 힘들고 아픈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연합하여 선을 이뤄내시는 하나님 아니시겠습니까? 그 하나님을 믿으며, 나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내 마음에서 깨닫게 해주시는 감동과 생각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낼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고 내비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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