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2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4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5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7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오늘도 다시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입다의 모순적인 신앙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장차 다스리는 자가 될 자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에서 잘못된 다스림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맺고 있는가? 어떤 다스림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줄 아는,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다스리는 왕이 되어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1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2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3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전쟁이 끝난 후입니다. 게다가 입다는 그 전쟁에서 자신 입장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딸을 희생제사로 드리는 일도 마친 상태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했던 입다가 자신의 생각과 기준으로 가득차니 절로 여호와의 영이 떠나셨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 에브라임이 시비 아닌 시비를 겁니다. 왜 암몬과의 전쟁에서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냐는 겁니다. 어디서 보던 장면이지요? 네.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고자 할 때 나중에 뒷북을 쳤던 에브라임 지파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동을 다시 입다에게 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그들을 잘 설득해서 마무리지었다면, 입다는 에브라임지파와 내전을 펼치고자 합니다.
입다는 속이 빈 강정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여호와를 말하지만, 속은 자신이 왕이 될 생각으로 가득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암몬과 전쟁에서 승리했었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승리로 그는 자신이 멋대로 서원한 것을 순종하고자 독녀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형제지파와 내전을 펼치게 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사는 자, 게다가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하는 자의 삶은 이렇게 펼쳐집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에브라임 지파는 입다를 모욕하기까지 했습니다. 4절입니다. "
4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입다는 쫓겨나서 이방땅 돕에 간 것이지 무엇인가가 무서워서 도망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은 무언가 우위에 있다는 듯이 말했고, 그 결과 입다는 이들과 싸우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제가 입다의 승리가 승리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이루려고 하는 승리는 결코 나에게 선한 열매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독이 되고 덫이 됩니다. 차라리 안함만 못합니다. 자신의 열정으로 신앙생활하고자 하는 자의 결말은 성경에서 항상 이렇게 좋지 못합니다. 특히 신약시대의 율법교사들,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배반한 가룟유다, 헌금을 속여 초대교회의 출발을 그르치고자 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나의 믿음없음을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러한 죄인을 부르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척, 신실한 척. 그렇게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들이 오히려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입다는 이제 에브라임과 내전까지 벌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대표자로서의 권세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5-7절입니다.
5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6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7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사사로서의 입다의 마지막 행적은 내전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입다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요단강 서쪽 에브라임지파 사람들과 요단강 동쪽에 사는 길르앗 사람간에 사투리 발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착안하여 입다는 요단강에 사람을 보내어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들, 특히 입다에게 따지러 왔던 에브라임 사람들을 구분하여 그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입다가 살던 길르앗 사람들은 발음을 강하게 하여 쉽볼렛이라 하였고, 요단강 동편 에브라임 사람들은 좀 더 부드럽게 십볼렛이라고 발음했기에 그것으로 구분하여 결국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 4만2천명을 죽이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로 에브라임지파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입다 또한 사사가 된지 6년만에 죽어 고향땅에 뭍히게 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다스리는 자가 될 자들입니다. 입다를 바라보며 우리는 "하나님께 나약함을 인정하는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를 통해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에 충실한 자가 장차 큰 것에서도 충성된 자가 된다는 가르침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이용하기보다, 하나님을 믿으며 충성하여 승리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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