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13그 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
14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들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들이요 베냐민은 백성들 중에서 너를 따르는 자들이요 마길에게서는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도다
15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잇사갈과 같이 바락도 그의 뒤를 따라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6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7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
18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19왕들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20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21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22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 소리가 땅을 울리도다
오늘도 다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시간에 사사 드보라와 바락이 찬양하는 시를 보았습니다. 전쟁의 처음부터 과정,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를 찬양했습니다. 드보라는 그것이 너무나도 감격되어 이사실을 모르는 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너무 맛난 식당을 알게 되어도, 또 너무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아도 누군가에게 그 느낌과 감정,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다스림을, 개입하심을, 역사하심을, 승리하심을 경험한 사람은 얼마나 더 말하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는 전도대회가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저절로 전도를, 저절로 복음전파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일부러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본문을 그럼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2-13절입니다.
12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13그 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
드보라는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고자 자신을 향하여 "깨어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의지를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인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라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깨어있던 드보라였기에 사사로 쓰임을 받았지만, 깨어있지 못해 약속을 믿지 못했던 바락은 그 영광을 얻지 못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남성을 통해 여성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남성이 하나님의 질서에서 더 우선권을 갖는다고 해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깨어있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내려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 산꼭대기에 있다가도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함께 내려옵니다. 그렇게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일상이 이렇게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14-18절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과연 그럼 누가 이 은혜에 동참하고 은혜를 흘려냈을까요?
14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들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들이요 베냐민은 백성들 중에서 너를 따르는 자들이요 마길에게서는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도다
15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잇사갈과 같이 바락도 그의 뒤를 따라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6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7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
18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우리는 이 전쟁에 대표적으로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의 1만명이 있었음을 살펴봤죠. 그런데 여기서는 좀 더 자세하게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10지파를 언급하며 사사 드보라가 요청했을 때 응답한 지파들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에브라임, 베냐민, 마길이라고 불리우는 므낫세 반지파, 잇사갈, 스불론, 납달리가 그러합니다. 그들은 깨어있었고 그리하여 이 전쟁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르우벤, 나머지 요단강 동편의 므낫세 반지파, 단, 아셀은 이 전쟁에 응답하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표현하기를 그들이 가나안에 뿌리가 박혀있다거나, 그 자리에서 머물러 있다, 한가히 피리부는 소리나 듣고 있다, 자신의 바닷가 사업에나 치중한다고 표현합니다. 마치 예수님의 달란트비유 속에서 땅에 돈을 묻어두었던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기억납니다. 그러나 싸웠던 지파들에 대해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는다, 골짜기로 달려가다,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고 표현을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또 다른 예수님의 비유 임금의 결혼잔치 비유에서 자신의 사업, 밭, 일상에만 머무르다가 결국 임금의 아들 결혼식에 참여하지 못해 울며 이를 갈게 되는 이들도 기억납니다. 우리의 의지, 감정, 이성, 생각, 양심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선한 부르심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19-22절입니다.
19왕들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20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21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22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 소리가 땅을 울리도다
이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 말하는 시스라입니다. 가나안 족속들도 이스라엘 지파들을 향해서 싸웠으나 그들은 결국 전리품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자연만물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어 이스라엘을 도우십니다. 기손강이 시스라 군대를 표류시킵니다. 시스라는 이스라엘을 두고 "내 영혼아!"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가 되어 싸웠음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20년 동안 억압받았지만, 이제는 이스라엘이 그들을 밟고 위에 올라섰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이스라엘을 심판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비인격적이고 폐륜적인 우상숭배와 문화를 심판하라고 보내셨는데, 그 모습이 이제야 다시 회복되는듯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을 이루며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은혜주신 이유, 보내신 목적은 다 잊어버린채 살아가는 자들은 결국 가나안 백성처럼 표류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은혜를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누군가를 섬긴다는 것이 다스림입니다. 그 사람은 돈에 울고 웃고, 사람 인정에 분노하고 웃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자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인도해가시는가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되어 세상을 섬기며 다스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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