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9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20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1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3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오늘도 다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믿는 다는 사실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럼에도 다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1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그렇습니다. 지금 이 본문은 사사기 전체를 관통해주는 사이클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언약을 배반하고 다른 신을 섬기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다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럼에도 또 가서 다시 죄를 짓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사랑으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 내곁에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7-18절입니다.
17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하나님이 다시 은혜를 베푸셔서 이스라엘에게 메시지를 전할 선지자와 같은 자들인 사사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순종하지 않고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떠나 제멋대로 행동했습니다. 그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게 익숙한 것, 내가 하고자 하는대로, 고치기 싫고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것" 그러니까 결국 자기자신이 익숙하고 하고픈대로 하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가나안 땅에 진멸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다른 신들, 그리고 그 신들을 섬기면서 가지게 된 음행의 습관들인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이렇게 될 습성을 가지고 있기에 진멸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사사들을 통해서 은혜를 베풀고자 하십니다. 사사들과 함께 하시고, 그 사사가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세워지니 대적들이 떠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18절 하반절에 그 이유가 의미심장합니다. "부르짖으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픔과 슬픔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들을 심판대에 세우는 것을 잠시 유예하시고, 기다려주시고, 인내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들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아파하는 소리에 가만히 계시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은 심판과 정죄 앞에서도 우리의 부르짖음에 사랑과 인자를 통해 다시금 뜻을 돌이키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라는 사사가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그 사사를 배반하고 불순종하고 제멋대로 살고자 했었던 자들아닙니까? 아니 지금도 그 사사의 메시지를 떠나 제멋대로 살고자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영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시고, 또 알려주시고, 또 기다려주시고, 또 계속 함께 하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계속해서 자기자신의 죄악에 대해서 회개하는 자가 아니라 회개조차 하지 아니하고 교만하고 방자하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를 당연시 여깁니다. 용서를 받고서 다시 실수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용서를 당연히 여기는 나태함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꼭 그러했습니다. 19절을 보실까요?
19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더욱 타락하여" 같은 죄에 같은 실수를 하며 넘어질 수 있지요. 그렇게 계속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조금씩 이겨나갑니다. 조금씩 은혜로 죄를 넘어섭니다. 그런데 반대로 같은 죄에 같은 실수를 하며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조금씩 더 타락합니다. 조금씩 더 악해집니다. 그렇게 우상에게 넘어가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차라리 눈 앞에 거대한 대적이 있으면 더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죄와 사단의 공통점은 은밀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조금씩 죄악에 잠식되다가 결국 가나안 문화를 따라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고 절하고 가나안 주민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에서 스스로 멈출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20-21절입니다.
20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1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약속을 어기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였기에 관계가 깨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능력으로는 쫓아낼 수 없는 이방민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쫓아내주셨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스스로 살아가보라는 말씀이시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재앙은 "유기"입니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지요. 무언가를 믿고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그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영유아가 부모의 돌봄없이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대로,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주장대로 살아가다가는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22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3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깨어진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로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가르치십니다. 혼을 내시고 징계를 내리시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방민족과 이스라엘이 싸우게 내버려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그것은 이방민족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인류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끔 해주십니다.
이렇게 2장이 마무리됩니다. 사사기는 이제 이 패턴이 계속 반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곁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살아가다가 넘어지고 다시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탕자된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그관계가 지금 우리의 모습아니겠습니까? 항상 우리에게 다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시며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풍성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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