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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사사기_다시 주시는 은혜

삿 1:22-26

by 우루사야 2022. 9. 2.

22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23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24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5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26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오늘도 다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판단하고, 불순종하고, 온전치 못한 판단과 결정을 하여 넘어지더라도 다시 세워주시고 일으켜주시고 괜찮냐 물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지파들의 잘못들을 지적하는 사사기 첫장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사기를 묵상하실 때에는 잘못만을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잘못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들을 향해 말씀하시고 기다리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2절입니다.

22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요셉가문이라함은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를 말할 것입니다. 이들이 땅을 분배받은 것을 보면 유다지파 다음으로 크고 또 중부지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축복받은 지파이고 동시에 그만큼 책임을 다해야 하는 지파라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사사기에서도 유다지파 다음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사기는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 일컫어지는 곳을 언급합니다. 이들에게 혈통적으로 역사적으로 선조들이 세운 도시 벧엘을 정복하러 나아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고까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또 사람을 의지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23-25절입니다.

23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24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5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이 장면은 우리가 여호수아서 초반부에 기생 라합을 연상케 합니다. 그런데 라합과의 차이가 있다면 "신앙고백"이 있느냐 없느냐겠지요. 제가 계속해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호수아서는 높은 영적흐름에서 가끔 일어나는 불순종들을 언급하고 있다면, 사사기는 정말 떨어질대로 떨어진 영적흐름으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불순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셉가문이 벌인 전쟁 하나를 언급하는데 정탐꾼이 섭외한 한 사람을 통해서 전쟁에서 이기고, 그 사람이 어디에 정착했는지 말하는데 더 많은 분량을 쓰고 있습니다. 즉 이것이 잘못이라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라합은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길 전쟁에 대해서 말해주었다면, 지금 이 본문에서는 인간의 능력으로 이겨버렸던 잘못된 승리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리고가 무너질 때 라합은 단지 숨겨주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온전히 여리고성을 진멸시키셨습니다. 거기에 이스라엘 백성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요셉지파, 유다 지파 다음으로 가장 축복을 많이 받은 지파가 인간의 힘을 입어서 전쟁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진멸하고자 함이 없었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26절입니다.

26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결국 자리를 잡고 주인행세를 하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성읍에 이름을 붙이고 후대까지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사사기 저자는 "오늘까지 그곳의 이름이 되니라"고 말하면서, 선조들의 이러한 불순종이 지금 사사기를 기록하는 후대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고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죄는 용서해주시지만, 죄의 결과를 목도케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 대해서 절반의 승리가 아니라 온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떻게 죄에서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영적흐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성화해 나아가야 합니다. 사사기에서처럼 점점 성화와 반대되는, 점점 안주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님과의 연합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되시길 소망합니다. 죄인인 나에게 다시 은혜를 주시는 주님을 기억하시는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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