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17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18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19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오늘도 다시 은혜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의지해가는 이스라엘과 유다지파, 그리고 갈렙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사기 저자는 유다지파가 승리하긴 하지만, 온전하지 못한 승리를 이어가는 불안정한 모습을 말해줍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렇게 계속해서 작은 불순종이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는 이스라엘 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사사기 시대 내내 이민족에게 억압받게 되는 것이지요. 본문 16-17절입니다.
16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17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모세의 장인은 이드로이지요. 모세가 궁정에서 도망쳐 미디안 광야생활을 할 때에 받아주고 또 자시의 딸과 결혼까지시켜 정착시켰고, 더 나아가 그가 출애굽 지도자로 서는데 있어서 곁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자입니다. 그렇게 겐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은 서로 융합되기 시작해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함께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유다지파에 속하여 함께 하고 있네요. 그리고 17절에서는 유다지파가 시므온 지파와 함께 진멸,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의 문화와 사회의 우상숭배의 뿌리까지 없앴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여지는 교훈은 이렇습니다. 민수기 10:29에서 모세는 장인에게 "잘 모시겠으니 함께 동행하시지요"라는 제안을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가나안 정복전쟁을 이민족인 겐족속은 함께 보고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유업인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함께 거주하기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늘어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함께 연합하고 함께 살아가고 함께 목격하며 이뤄지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예배드린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생활하고 교제하고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울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참된 교회의 모습이 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데 17절에서 다시 시므온 지파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스밧이라는 도시는 애초에 시므온지파가 분배받은 땅입니다. 그런데 주도권이 유다지파에게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시므온 지파는 이렇게 서서히 지파로서의 주도권이 사라지고 흩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또 문제가 나타납니다. 유다지파가 정복전쟁을 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18절에 보니 "18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이스라엘 역사 내내 그들을 괴롭혔던 이민족을 떠올려보면 "블레셋"일 겁니다. 유다지파는 블레셋의 가장 주요한 도시 3개를 점령하게 됩니다. 이 도시들이 해안가에 있는 도시인 것을 감안해보면 유다지파는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정복전쟁을 위해 나아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사실 블레셋에는 주요한 도시가 2-3개가 더 있다는 것입니다. 즉 유다지파는 결국 절반밖에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19절입니다. "19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그 블레셋을 애초에 다 진멸하지 못해 지금도 팔레스타인들과 갈등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지금이야 복음의 시대이니 팔레스타인들도 복음의 대상자들이니 우리가 한쪽을 더 우호적으로 볼 수는 없겠습니다. 어쨌든 본문으로 돌아와 유다지파는 블레셋족속을 온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9절에서 우리가 의아한게 있습니다. 상반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와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가 함께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온전히 승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하셨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까? 이럴 때에는 문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인간의 능력으로 나아가는 유다지파를 살펴보고 있지요. 하나님이 아니라 유다지파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바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산지에서나 골짜기에서나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여호수아 시대때 출애굽 2세대들은 보고 자랐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철병거이든 아니든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왜 승리하지 못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지 않았음을 사사기는 첫장부터 말해주면서, 사사기 내내 어떤 흐름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우리에게 미리 말해주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20-21절 살펴봅니다.
20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여기서 갈렙과 베냐민지파가 등장합니다. 갈렙은 모두가 두려워하던 거인 아낙자손을 쫓아내지만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간의 방법으로 해냅니다. 베냐민 지파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가지 종류의 영적전쟁의 승리결과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보았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는 승리, 갈렙이 노년에 인간적 동기부여를 첨가하여 이기는 승리, 그리고 베냐민 지파의 절반의 승리일 것입니다. 모두다 승리이긴 합니다. 그런데 각 승리의 결과는 다르지요. 아시는 바와 같이 베냐민 지파의 이러한 절반의 승리에 대한 고발은 사사기 마지막장에서 일어날 베냐민지파와 다른 지파간의 내전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과 순종, 열정으로 나아갔다면 추후에 괴롭힐 이민족도 없을 것이고, 우상숭배로 타락하여 다른 지파와 내전을 벌일 일도 없을 것입니다. 지파 내에 사회적 불안감이 조장되어 끔찍한 사건사고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첫단추가 중요합니다. 애초에 잘 시작해야 합니다. 중간에 고치기는 더 힘듭니다. 그래서 초심이 중요한 것이고, 초심을 기억해야 하며, 초심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처음 만나던 첫사랑, 하나님을 가장 우선시하며 모든 것들을 하나님보시기에 좋도록 하던 그 때를 기억하며, 순수한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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