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3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8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샬롬,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새로운 9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가을에 하나님께서 사사기를 통해 주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사사기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죄의 반복의 역사입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보여줬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는 삶을 배웠다면, 사사기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빠지고 사람의 능력으로 살아가다가 패배하는 삶이 연속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성경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고 이끌고 가시는 장면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사기는 인간의 다양하고도 반복되는 상습적인 배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지도자를 보내셔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 사사기를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입니다.
1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것부터 말합니다. 즉 여호수아 시대와 구분되는 영적 흐름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여호수아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자이기도 합니다. 즉 사사기는 예수님을 예표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음에 따라 일어나는 영적방황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절 하반절에 보니 "누가 먼저 올라갈 것인가"를 여호와께 여쭤봅니다. 본래 여호수아서에서 땅을 분배할 때 중심되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법을 각 지파가 각자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지요. 각 지파는 그래서 이제 스스로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제하면서 자신의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이뤄내게끔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먼저 올라갈 것인가?" 이 말에서 거리낌이 주저함이 느껴집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진멸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택하셨으니 그 땅에 하나님의 거룩, 샬롬, 통치, 은혜가 가득하게 해야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 경제, 사회까지 전체를 싹 바꿔서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라는 것이 진멸의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각 지파는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호수아서 말미에 보면 안식이 등장합니다. 각 지파는 전쟁을 끝내는 안식이 아니라, 영적주도권이 가나안 우상숭배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바뀌어진 안식을 누리며 전쟁에서 마저 승리해야 하는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영적기류, 주도권이 바뀌었습니다. 죄와 공중권세 잡은 자에서 의로움과 하늘과 땅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었습니다. 각 지파가 각자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만들듯,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가정, 사회, 직장, 이웃과 천국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2절과 같이 "손에 넘겨 주었노라"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제자를 삼아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영원한 안식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갈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유다지파를 지목하십니다. 야곱때로부터 유다는 장자역할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먼저 나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유다지파가 먼저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사기는 하나님의 능력없이 싸우는 인간의 역사입니다. 3절을 보실까요? "3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유다지파와 시므온지파가 분배받은 땅의 지형도를 보면 계란 노른자와 흰자와 같은데 약간 노른자가 왼쪽 아래쪽으로 쏠려있습니다. 어쨌든 유다지파는 시므온 지파가 유다지파 영역 안에 위치하고 있으니 같이 싸우자고 말합니다. 얼핏보면 형제가 함께 연합하는 좋은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지파보고 싸우라고 하셨지, 시므온에게 나서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사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인간이 인간을 의지하여 싸우는 역사입니다. 유다지파는 시므온지파의 힘을 빌어 이기고자 했습니다. 사사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첫 전투입니다. 첫 전투에서부터 어긋나는 모습은 사사기 내내 어떤 전투와 결과가 이어질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해주는듯합니다. 본문 4-7절입니다.
4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유다의 이러한 전략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이 승리하게끔 해주십니다. 베섹이라는 곳에서 큰 승리를 거두는데 그 땅의 왕 아도니 베섹을 처형하기보다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만 잘라 전쟁만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왜 유다지파는 처형하지 않고 이렇게 했을까요? 그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때문이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유다지파가 아니라 시므온의 협력과 그곳 원주민 아도니 베섹의 협력으로 유다지파의 번영을 꿈꾼 것이지요. 그것은 누가 하던 방법이라고 본문에 되어 있습니까? 아도니베섹은 자신이 예전 전투에서 다른 왕들을 그렇게 대했습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없어 싸우지 못하는 왕들을 포로로 삼아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큰 위력행사를 했던 것이 아도니베섹이었습니다. 70명을 그렇게 했다고 하니 가나안 땅에서 얼마나 정치적 입지가 컸던 아도니베섹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 유다지파는 지금 그 아도니베섹이 하던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싸우라고 해서 싸우는 유다지파니, 이겨도 제대로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사사기는 고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믿는 신자이지만, 겉모습만 신자여서는 안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진심과 내면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으로써, 우리의 행동의 근원을 보고 계십니다. 유다지파처럼 이제 전쟁을 끝내고 어느정도 타협하며 살아가고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를 제일순위에서 계속 끌어내리려는 죄악과 세속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한 태도를 보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8-10절을 보겠습니다.
8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예루살렘은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가 공유하는 도시였습니다. 서로의 경계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유다자손은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싸웠지요. 10절에서 보이는 세새와 아히만, 달매 등은 우상신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는 왕들의 이름입니다. 아도니베섹은 살려두었지만, 나머지는 죽이는 기준과 잣대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사사기는 "각자의 소견에 옳은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판단대로 행하는 인간의 역사"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의 출발점은 성부 하나님의 창조요, 우리의 마지막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이 조명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 삶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천국을 만드는 삶이겠습니다. 그래서 우린 나의 소견, 나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날 창조하셨기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예수님을 마지막에 뵈야 하는데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령 하나님이 지금 내 양심 속에서 무어라 말씀하시는가? 물으며 그 인도를 따라 하나님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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