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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마태복음_명예로운 삶

마13:17-23

by 우루사야 2022. 6. 24.

1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18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이번 한주도 예수님과 함께 명예로운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지난 토요일에 이어서 네가지 밭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 깨닫는 사람은 어떤 자였습니까? 천국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을 믿기에 천국증거가 나타날 수록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도 회복될 수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천국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천국의 증거들로 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내쫓고, 죽음에서 일어나 부활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지금 그렇게 되지 않을찌라도 우리가 죽어 다시 눈을 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렇게 가장 선하고 자유한 자가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독특하고 고귀한 것인지 말씀해주십니다. 17절입니다. 

1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이런 믿음의 고백을 인류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하게 드러난 증거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인류와 지구를 회복시키실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 책들입니다. 그 때가 되면 한 왕이 일어나 온 인류를 회복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성령 하나님이 인류에게 임하셔서 우리가 신과 같은 자들이 될 것임을 말해주었습니다. 그 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천국의 증거들을 보여주시며 천국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선언하신 그 때입니다. 구약시대를 살았던 자들은 이 확증의 시대를 살지 못했습니다. 많은 선지자와 의로운 자들이 보고 듣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후에 확증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천국이 가까워졌다는 것은 거리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 할 수 없던 시대에서 확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벧전1:8)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은 확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음이 얼마나 고귀한 선물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확증의 믿음이 허락되었으니 네가지 밭 비유를 듣고 우리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8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기에 복음증거가 마음밭에 심겨졌습니다. 그러니 귀신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습니다. 말씀을 뺏어갈 수 없습니다. 두 번째 20절입니다. "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환난 박해 속에서도 천국 증거를 가지고 그 고난을 살아냅니다. 베드로는 "너희의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7)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기에 우리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육간의 강건함으로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22절입니다. "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어떤 가시떨기가 우리의 믿음을 해하려 한다 할찌라도 오히려 순결한 믿음은 더욱 굳세져 염려와 재물의 유혹을 이겨낼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23절과 같이 "23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될 줄 믿습니다. 

이번 한 주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우리는 천국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확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 더욱 간구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할 그 날을 고대하고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삶에 사단마귀, 근심, 염려, 유혹이 들어올 틈이 없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명예롭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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