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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마태복음_명예로운 삶

마 9:1-8

by 우루사야 2022. 6. 3.

1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우리의 삶이 명예로울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을 회복시키러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갈릴리 호수 동편에서 사역하시고서는 다시금 갈릴리 서편 본집이 있는 동네, 가버나움으로 오셨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은 계속해서 인류의 아픔을 짊어지는 사역을 이어가십니다. 그런데 지난 본문에서는 병치유와 함께 귀신을 내쫓으셨다면, 이번에는 병치유와 함께 죄사함을 명하십니다. 1-2절입니다. 

1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2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본래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시면서 온 우주의 중심으로 삼으셨습니다. 천사까지도 흠모할 만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인류였습니다. 천사는 지어질때부터 하나님의 종으로 지어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인류는 지어질때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지어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인류를 흠모하지요. 아무리 천사가 영적존재로 지금 우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인간에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 일어납니다. 그 모든 의미와 가치가 사라지고, 금수와 같은 한낱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인간이 가진 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중풍을 가진 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풍이 심하게 왔는지 움직일 수가 없으니 친구들에게 부탁하여 자신을 예수님께로 이끌고 가달라고 부탁했나 봅니다. 이것을 보고 예수님은 3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작은자, 안심하라, 죄사함을 받았다. 병듦이 언제나 죄로 인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가 처한 운명이 병듦이기 때문에 보편적 죄로 인해 죽는 것이지, 특정한 죄를 지어서 항상 병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병자에게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이 사람은 죄로 인해서 병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가진 이자가 예수님이 자신의 타락한 이 처지를 해결해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나아온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평안해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작은 자야, 그러니까 아들아, 또는 내 손에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자여. 라는 호칭을 쓰시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해소되었고 그 결과 병도 나을 것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사단마귀에게 사로잡히는 마음이 되던지, 죄로 인해서 육신이 병들어 움직일 수 없게 되든지 어쨌든 죄는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잃고 죽어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회복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3-4절입니다. 

3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4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말씀교사 서시관들이 생각하기를 예수님이 선을 넘었다 생각했습니다. 기적은 일으킬 수 있지만 죄를 사하는 것은 한낱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지요. 그들의 말이 맞습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죄를 가지고 왈가왈부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신데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이 되신 하나님아니십니까? 죄가 없으신 인간이시기에 다른 인간의 죄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셨던 것이고, 또 하나님이시기에 죄를 사해주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구약 속에 담겨진 인류의 대표로 오실 자가 어떤 능력으로 오시는지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런 말씀교사들의 생각을 두고 "악한 생각"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말씀을 오해한 것이 왜 악한 생각일까요? 말씀교사들은 오로지 "율법을 지킴"으로써 죄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애써야 하나님이 그것을 보고 기뻐하시고 죄를 덮어주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 생각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율법을 감당하였으면, 그 율법의 본심과 진심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향하는지 해설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지요. 이에 예수님은 악한 생각이라고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죄가 어떻게 사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5-7절입니다. 

5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6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7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예수님은 죄사함의 결과로 병이 나아 전신마비가 온 이 자가 걷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하십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작은 자라고 불렀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던 이 사람은 자신이 누워서 온 간이침대를 자신이 들고 두 발고 걸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담당하고 있었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본심은 인간과의 관계회복이지 결코 율법에 얽매이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셨습니다. 더욱이 율법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읽지 못하고 자신의 죄와 욕심으로 읽고 해석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율법에 얽매여 복음을 가리려고 했던 이들의 악함까지도 드러내셨습니다. 서기관들에게 "악한 마음을 왜 가지느냐!"라고 청중 앞에서 드러내시며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사역을 가로막고 있었는지 드러내셨습니다. 마지막 8절입니다. 

8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님 근처에 있었던 무리들은 이 광경을 보며 생각했을 겁니다. 율법을 담당하는 이들과 예수님 사이에서 누가 더 옳은지 말이지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이 기적을 죄사함으로 보지 못하고 병이 일순간 나은 기적 중 하나로 본 것이지요. 만약 죄사함의 결과로 봤다면 천국이 얼마나 가까이 온 것인지, 죄를 정복하고 인류가 자유해지는 날이 얼마나 가까이 온 것인지 그들은 알았을텐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들보다 더욱 더 천국의 코 앞에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천국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 천국이 임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명예로운 삶의 위치로 불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늘 하루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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