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17장 33절
제목 : 짐이 되는 사람, 짐을 짊어지는 사람
33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1) 들어가기
할렐루야!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다함께 우리 예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시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사흘만에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줄 믿습니다. 영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가 다시 만날 그 날을 위해 인도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하늘과 지금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장 뛰어난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아멘.
2) 오늘은 기쁜 부활절입니다. 우리는 그간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통해서 우리가 과연 살아계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부활절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내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 예수의 모습을 살아내는 것. 낮아지고 섬기는 삶을 살아내셨던 예수처럼 살아내 작은 예수가 되는 것.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낮아지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 낮아지는 예수가 되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이 되기를 결단하고 또 결단하여 오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40일동안 주님을 따라오느라 수고한 우리 곁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다시 한번 보냅시다.
3) 지난 주 오후 소그룹 모임 때였습니다. 처음 소그룹을 시작하면서 함께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한 분은 이 기간동안 "내가 정말 죽어보자"라는 결단을 하며 사셨다는 귀한 고백을 듣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저와 같이 혈기가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고민해보았다고도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 나 자신을 죽이고 예수님을 드러내고자 몸부림치셨던 그 시간이 저는 참 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낮아진 우리의 모습 위에 예수님이 드러내시고, 사랑을 표하시며, 빛으로 세상을 비추셨을 줄 믿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의 모습을 드러내셔서 세상을 밝히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4)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33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복음서에는 이 표현과 비슷한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를 낮추시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를 높이신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는 법입니다. 세상은 결코 이렇게 살 수 없지요. 믿음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내려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고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죽고, 그곳을 섬기기 위해 내려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지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4-1)그런데 예수님은 이 본문 말씀 전에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32롯의 처를 기억하라" 롯의 처하면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된 사람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즉 롯의 처는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로서 목숨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하고자 하셨던 것이지요. 분명 하나님의 사자들은 그들에게 "17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했지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아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마치 아브라함과 롯이 서로 갈라져 떠나기로 했을 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선택권을 넘겨주고 자신의 눈을 감았지만, 롯은 눈을 들어 소돔땅을 바라봤듯이 말이지요. 롯은 안목의 정욕으로 땅을 바라보았고, 롯의 처는 재앙이 임하고 있는 소돔성에 미련을 두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살려주고자 뒤돌아 보지 말라고, 안목의 정욕을 버려두라고 경고하셨음에도 말이죠.
4-2) 예수님께서 롯의 처를 기억하면서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라고 하신 것은 결국 내 안목의 정욕, 나의 기준, 세속의 방법으로 살고자 하는 자에게 부활은 없을 것임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뒤에 "잃는 자는 살리리라", 자기 목숨을 보전하지 않고 잃는 자는 살리리라. 자기 목숨을 사용하고 닳고 닳도록 쓰라는 겁니다! 그런 자는 "살리리라" 우리 주님이 살릴 것입니다! 세상 뒤를 돌아보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오늘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러 내려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5) 우리는 박지성하면 축구를 떠올립니다. 김연아하면 피겨스케이팅이 떠오르지요. 세종대왕하면 한글창제, 이순신 장군하면 임진왜란과 거북선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예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우리가 그간 살펴봐온 대로,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과 같이 "목숨을 잃은 길을 걸어 다시 목숨을 얻은 최초의 리더"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쉽게 부활을 살아낸 첫 사람으로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예수님하면 우리는 지금 여기 이곳에 살아계신 분이자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 모든 인류 중에 처음으로 부활하신 분으로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6) 이에 반해 누가복음 24장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의 죽음에 비통하던 이들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아!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잃는 고난 후에야 하나님이 다시 목숨을 살려주시고 높여주시는 영광"에 들어간다는 이 원리를 믿었고 그렇게 살았고 또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이것을 믿고 이대로 살으라고 말이죠.
7)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낮아지고 헌신하고 희생하고 섬기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힘듭니까? 이기려니까 힘든 겁니다. 내가 더 올라서야 하니까 힘이 든 것이에요. 성경은 말하는 겁니다. 내려가라. 그게 네 할일이다. 나 여호와 하나님이 할일은 "높이는 것"이다. 내가 높이리라. "15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높아지려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신비를 체험해야 합니다.
8)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원리를 한번 살펴볼까요? 요즘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파친코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더군요. "내가 한 걸음 앞서가면, 내 옆에 있던 사람은 뒤로 물러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죠. 우리가 앞서간다는 것, 우리가 남보다 빠르다는 것.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예수님께서 내려오신 이유, 구약성경에서 계속해서 임마누엘이라 말하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예언하신 이유, 예수가 부활승천하였음에도 성령하니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지금 우리 가장 깊은 곳에 내주하고 계시는 이유. 그 이유들로도 우리는 마냥 앞서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에 중고등부 소그룹 시간에 주영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진로, 군입대시기 등 이야기하는데 모든 중심에 집이 있더군요. 그래서 왜 그런지 물어보니 "아빠 혼자 감당하시기보다 자기가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지난 주 우리가 살펴본 고르반을 악용하는 유대인과 유대인이 아닐지라도, 성경지식이 그렇게 많은 이가 아닐지라도,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해보자면 직분도 없는 중고등부 한 녀석의 이 심성을 하나님께서 좋게 보시고 또 사용하시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9) 과연 하나님과 단절된 채로 죽음을 맞이하셨던 예수님은 고민이 없으셨을까요? 그 분도 사람이셨습니다. 두려우셨겠지요. 과연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이 사명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것이 맞는 것인가? 아무리 예수님이 성령 충만하셨어도 인간으로서의 고민과 생각, 걱정이 있으셨기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렇게 피땀을 흘려가며 내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을 기도하셨겠지요. 그 고민을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내려가는 겁니다. 내가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부활을 기다리는 겁니다. 부활은 결코 종말의 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오늘 죽음으로써 내일 다시 사는 겁니다. 오늘의 부활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저는 주영이를 생각하면서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너무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을까요? 주영이와 대화를 하면서 얼굴은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었습니다. 왜 일까요? 가족이니까, 사랑하니까. 마찬가지 아닐까요? 예수님은 그 무덤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당연히 순종했고, 하나님과 가족이니까 당연히 무덤으로 희생하러 들어가셨던 것이지요. 가족이니까요.
11)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으로 짐이 되는 사람, 짐을 짊어지는 사람이라고 드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짐이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 짐을 다 지고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마치지 아니하시고 다시 살아나셨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희도 나와 같을지어다. 나와 같이 부활하여 다른 이의 짐을 지어가라고 말이죠.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가족입니다. 그 아버지께서 이제 다른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향해 나아가자고 부르십니다. 섬기러 가는 길입니다. 희생하러 가는 길입니다.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다시 살려주실 것을, 예수따라 부활의 길을 걸을 것을 말이죠. 그 믿음을 가지고 이번 한주도 참된 부활한 작은 예수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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