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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절기설교

사순절05. 맨손으로 승리하세요.

by 우루사야 2022. 4. 1.

 

 

본문 : 마 4장 1-11절
제목 : 맨손으로 승리하세요.

1. 서론
1) 예화
얼마 전 우리 축구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진출을 이뤄냈습니다. 그 가운데 주목받는 것이 대표팀 감독으로 있는 벤투감독입니다. 1260일로 우리나라 축구국가대표팀 최장수 감독이라고 하더군요. 결과도 28승이라는 역대 가장 좋은 성적을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그 감독이 우리나라 축구기술위원들과 대화하면서 의아한 점이 한가지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국가와 상대할 때만되면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너무 변화가 많다는 겁니다. 즉 벤투감독은 한국팀만의 것을 가지고 상대에 따라 조금씩 변형은 가능하겠지만, 아예 상대팀에 맞춰서 싸울 수는 없다는 겁니다. 즉 자신의 것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고, 그 결과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지요.

2) 주제
오늘은 영적싸움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사탄을 쫓아보내신 이야기로 유명한 이야기이지요. 우리는 보통 예수님이 떡시험을 육신으로 이기시고, 성전에서 떨어진 이야기를 심정으로 이기시고, 경배하라는 시험은 영적으로 이기신 사건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표면적인 해석이고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려면 "예수님의 전략"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어떻게 예수님이 사단을 물리치셨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탄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전략은 "하나님을 높이려고 내가 낮아지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셔서 승리한다"는 전략으로 예수님이 이기셨다는 겁니다.

벤투감독이 굳건한 자신의 전략, 한국팀다운 전략을 말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성수, 신비한 기도, 안수, 기도하는 자리, 40일 금식 이러한 것들이 한국무속신앙과 혼합되어 기독교 안에 남아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전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은 개인의 신앙수준을 돋보이게 하려는 수단으로 많이 전락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단과 사이비교주를 통해 익히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위해 낮아지는 삶을 지속적으로 말해줍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낮아져 승리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습니다.

이번 주에 기도하는 가운데 제 안에 얼마나 성공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 계속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번에 함께 나눈 구절 "23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마20)"는 말씀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설교시에 많이 다루지 않는 구절이었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예수님의 잔, 섬김의 잔은 누구든 함께 참여할 수 있고 또 그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 그들이 얻을 것이다. 이사야! 신경쓰지마라! 니 미래 하나님께 달렸다, 지금 낮아지는, 섬기는 현재를 살아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넉넉히 주셨습니다. 이미 가진 것을 가지고 나누는 삶에 집중해야 합니다. 내 미래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한 미래를 가지려고 동분서주합니다. 트럼프를 비롯해 부자들보고 얼마나 더 가지면 좋겠냐고 했더니 "조금 만 더, 10퍼센트만 더"라고 말했다고 하죠.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섬김의 자리로 다시 나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사신 섬김의 길"을 걸으며 최후에 웃을 자가 누구인지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하며,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론
1) 이 대결이 중요한 이유
여러분이 이 본문의 결말을 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이 이기셨습니다. 3전 3승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승리가 되기 위해서 몇 가지 이해하셔야 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 이번 대결의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1-2절입니다.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이 시험은 "성령에게 이끌리어" 받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이 대결을 만들어내셨습니다. 시험과 금식간의 상관관계는 나중에 다루더라도, 어쨌든 이 싸움은 결코 예수님이 타의적으로 받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이 시험에 마귀를 끌어들이신 것이었습니다. 장소도 그렇겠죠. 그렇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마련한 대결에 사단은 옳다구나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한것이지만 사실 이 대결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신 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이루고자 하신 것일까요?

3절입니다.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단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그러니까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 초능력을 써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 생각으로는 금식을 하고 있는 예수님께 진수성찬을 차려주면서 먹으라고 하는 유혹이 더 그럴듯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이, 여기에는 좀 더 고차원의 영적대결이가때문입니다. 금식을 못하게 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3, 6절에서 두개의 시험에서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며 인간이 아니라 신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라 말합니다.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시죠.

국가대표라면 그 국가의 구성원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인이 한국국가대표가 되고 싶으면 한국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이 인류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전한 인간이 되고자 하십니다. 어떻게요? 인간의 문제를 초능력으로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말이죠. 우리 인간 중에 초능력을 가진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내야 합니다. 고통과 고난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 시간을 껴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예수님은 그 고통의 40일을 살아내셨는데, 마귀가 마지막에 와서 그걸 방해하려고 시작한 것입니다. 초능력을 써서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신으로 돌아가게끔 하려고 말이지요. 단순히 배고픔에 대한 대결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대표가 되기 위해 온전한 인간이 되느냐 마느냐"의 싸움이었던 겁니다. 사단은 예수기 인간이 되지 못하게 해서 인류의 대표자리로 가는 것을 막고자 했고, 삼위하나님은 그것을 이루고자 하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어도 초능력이 있어도 묵묵히 그 시간을 살기로 하신 겁니다.

우리는 고난이 오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어제로 돌아갔으면, 아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으면, 아 내가 그 사람 생각을 좀 꿰뚫어 봤으면…" 이라고 말이죠. 예수님은 그러실 수 있으시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온전한 인간으로 이 대결을 싸우고자 하셨습니다. 3번의 대결 모두 초능력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우리가 모두 따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가 모두 따를 수 있는 것으로 예수님은 승리하고자 하셨고 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내라고 말합니다. 이제 그길이 열린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바래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과 같이 인간으로써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단보다 더 강한 자가 이 지구의 세력자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집을 산산히 부수었습니다. 이제 노예들이 해방길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시험을 만드신 목적이었고, 예수님은 이에 순정하셔서 이겨내셨습니다. 이제 인류는 사단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죠.



2) 승리하는 법, 낮아지는 것
그럼 도대체 예수님이 우리의 대표로써 어떤전략으로 사단시험을 이겨내시고 쫓아내셨는지, 그래서 구약 내내 사단에게 져왔던 인류가 예수님 이후로 이길 수있는 존재로 서게된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가지 시험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예수님전략을 알 수 있겠지요.

첫번째시험을 볼까요?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는 지금 당장 앞에 있는 문제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라고 말합니다. "초능력"으로 해결하라고 말이죠. 이것은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려 하는지 사단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입"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나의 문제를 내 경험, 감정, 생각, 판단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을 거쳐야 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판단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대등하고자 했던 사단은 패배합니다. 하나님보다 낮아지고자 하는 예수님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게 된 것이죠.

두번째 시험입니다. 5-7절입니다.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는 이번에는 그럼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해보자고 합니다. 그리고 초능력도 쓰지 말아보라고 합니다. 온전한 인간으로써 고층에서 떨어지는 것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받아내주신다면 되는거 아니냐고 말이죠. 얼핏보면 맞죠. 초능력을 쓰지 않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초능력으로 구한다면 모둔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하나님을 높이자는 조건이 맞는듯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기적, 이런 부흥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지요? 기적, 부흥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부흥입니다. 그 때를 알 수 없을지라도, 믿음으로 섬기면서 살아가다보면 그 믿음과 상황이 함께 결부되어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인생이 됩니다. 그 때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런 인위적이고 작위적으로 하나님을 시험해서 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니 사탄이 또 물러갑니다.

마지막 세번째입니다. 8-10절입니다.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귀는 이제 본색을 드러냅니다.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천하 만국과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서는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하만국을 사단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어쨌든 직접적으로 예수님께 높여주겠다고 말한 것이죠. 이에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였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나를 높여주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뿐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경배'라는 단어를 통해 사단도 하나님처럼 낮아지면 높여주리라고 하나님과 똑같은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럼 뭐가 다를까요? 사단에게 엎드리면 속박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엎드리면 자유해집니다. 결정적인 차이지요. 사단은 우리를 옭아맵니다. 좀더 움직이라고, 좀 더 가치있는 존재가 되라고 말이죠. 사단은 우리가 엎드리면 도 누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 있으라 말해주십니다. 그것이 낮아지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자유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죄가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인 자들은 하나님이 평안과 화평으로 높여주시는 은혜를 경험케 됩니다.


3)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승리 (가난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낮은 자리를 만드는 현대)
우리는 이 3번의 대결에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좀 더 세밀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내 때가 아니라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말이죠. 예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내며, 하나님이 주신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 말씀 아래서 살아가는 삶으로 결국 "사단을 이겨내는 삶"인 것이지요. 제가 제목으로 맨손으로 승리하세요라고 드렸습니다. 이 대결을 통해서 인류는 사단을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만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 부유하든 가난하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어느 국적 어느 출신이든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으로 사단으로부터 자유해지고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마지막 11절에서 이 대결의 끝이 보입니다.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이지요. 천국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세울 수 있는 천국이 이렇게 낮아짐으로 세워지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실재로 우리의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지요. 저는 그런 점에서 "가난"이라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현대사회일수록 또 고도화된 도시사회 일수록 가난은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국 돈의 많고 적음은 한 사람 인생의 경제적 어려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의 수 많은 영역을 다스리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발악하고 있는 마귀는 무엇으로 마지막까지 예수님께 대항하려 하고 있습니까? 바로 "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많은 부분이 돈과 함께 결부시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까지 하셨는데, 그 대표적 가르침을 한번 같이 볼까요?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 예수님은 하나님께 부요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에게 부요할 것인가라고 직접적으로 재물의 사용처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에게 부요한 것의 반대가 하나님께 부요한 것이라면, 무엇입니까? 내가 아니라 타인에게 나의 재물이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섬김은 나의 재물이 타인에게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어떻게 공격할까요? 예수님에게 초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처럼 자신의 방법으로 돈을 사용하라 합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당장 여기에 돈을 쓰면 내 생활이 편해지고 윤택해지니 이것부터 하고 나중에 돕자고 하겠지요. 두 번째로 내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받아줘 나를 높여주시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유혹할 겁니다. 자판기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이지요. 이정도 섬기고 헌금하면서 나에게 투자하지 않고 교회와 이웃에게 섬기면 내가 교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되어가고, 하나님이 이렇게 보답해주실 것이라고 말이죠. 세번째 유혹은 대놓고 옵니다. 재물에게 엎드려라, 경제적 성공이 일단 내 인생을 살려주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부동산과 투기에 온나라가 몰두해 있는 이상황에서 돌아봐야겠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당장 쓸 곳을 찾지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물을 쓰라, 헌금했다고 돌려받을 것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게 섬겨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너의 인생을 그 헌금한 액수로는 이룰 수 없는 놀라운 높이로 높이시리라. 너를 위해, 성공을 위해, 명예를 위해 재물에 엎드리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고백하라."
그런 점에서 다음 구절이 우리 가슴에 깊이 새겨집니다. 마태복음 19장입니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2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차인표씨의 간증을 한 번 들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예수님 뮤지컬을 무료로 4년 동안 출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아내 신애라씨가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한 인도빈민가구제사역을 대신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는 비행기를 퍼스트 클래스로 갈만큼 차인표씨는 너무 가기 싫었다고 하더군요. 마침내 도착해서 빈민가 어린이와 악수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더군요. 그 아이 옆에서 마치 예수님이 "나는 여기서 너를 기다렸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자신은 무대 위에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지, 여기서 만날 줄을 몰랐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이고, 마침내 나중에 예수님과 함께 하려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한주동안 우리가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가 고난 주간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고난당해야 할까요?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하고자 하는 잃어버린 자를 기다리는 그 자리, 예수가 함께 있는 가난한 자가 있는 그 자리가 아닐까요? 내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이를 보며 아니꼬워하고, 이미 놀라운 혜택을 넘어서서 뻔뻔한 요구를 하며, 타인이 은혜받는 것에 배알이 꼴려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는 고난의 시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후에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섬길 수 있는 그 자리를 위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 고난 주간에 나의 신앙을 위한 고난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기 위해 나의 재정과 에너지와 감정, 의지를 쓸 수 있는 고난"의 한 주를 보내길 소망합니다.
6일 동안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재정, 시간, 에너지, 감정 등에 대해서 고난주간 월-토까지 같이 고민하고 결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주간 주변 곳곳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고난의 현장을 살펴보시고 다음주에 결단하여 한주간 섬기며 이세상에 부활한 예수를 닮은 작은 예수가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5HbysQPugs&t=483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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