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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YAMEMORY
강해설교/시편_새마음 새노래

시137:1-9

by 우루사야 2022. 4. 14.

1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5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6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

7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8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9네 어린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시


신자가 고통받을 때, 교회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실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살펴온 성경은 "믿음을 발휘할 때"라고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고 계시고 준비하고 계시다고 말이지요. 왜 우리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정확히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후에 뒤를 돌아보면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성숙한 모습으로 하나님과 관계한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시편 137편을 부르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은 바벨론 사람들의 조롱, 너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디있냐는 조롱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신앙선배들의 기도이자 신앙고백이라 생각됩니다. 오늘도 이 시편을 나의 기도문으로 삼고 승리하시길 소망합니다. 먼저 1-4절입니다. 

1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2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3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4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은 시온에 모여서 성전에 오르며 부르던 노래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나라가 망하였고, 자신들은 이방국가에 포로로 끌려왔기 때문입니다. 2절에 보니 수금을 나무에 걸어놓고 찬양할 수 없는 비통한 심정으로 있습니다. 옆에서는 바벨론 시민들이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불러보라고 조롱합니다. 너희가 그토록 말했던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없으니 포로로 끌려왔다는 식의 조롱이지요. 그들의 요구대로 어떻게 찬양을 이런 상황에서 부르겠습니까? 그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바벨론의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뿐이었습니다. 과연 이럴 때 신자는 어떻게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5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6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결코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계셨던 시온성전을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선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임재였던 예루살렘을 잊어버릴바에는 오른손이 불구가 되거나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리는, 그러니까 자신의 몸의 기능을 잃을찌라도 결코 하나님과 함께 했던 그 시절 그 기억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이 회복될 것을 믿기에 에돔족속이 바벨론과 연합해서 자신들을 치며 즐거워했던 것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7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시어머니 곁에 있는 시누이가 밉듯이 바벨론이 침공해서 들어올 때 곁에서 돕던 에돔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적인 관계, 믿음의 초석까지도 무시한 처사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개의치 않았던 에돔의 처신을 하나님께서 꼭 기억해달라고 이스라엘은 말하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바벨론을 향해서도 저주스러운 기도를 합니다. 8-9절입니다. 

8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9네 어린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사실 예수님이 원수도 사랑하라는 메시지와 상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나에게 고통을 준 원수를 향해서 나는 이렇게까지 기도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른번씩 일곱번 용서하는 것이 맞을까요? 사실 두 가지가 모두 맞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요. 지금 시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도함으로써 그들이 받게 될 저주를 예언함과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은 바벨론인들을 향해서 인내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자신 스스로 복수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탁하고 의뢰하는 것이 곧 사랑인 것이지요. 그래서 기도의 현장에 인내, 사랑, 저주, 심판과 같은 굵직한 요소와 감정이 함께 어우러져있는 시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삶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원수를 향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인내하고, 기다리며, 인자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와 사랑을 믿으며 오늘 하루도 명예롭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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