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0편
1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시131편
1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습니다. 그 새끼들은 어미새가 먹이를 물어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어미새가 도착하면,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며 먹이를 달라고 눈도 뜨지 못한 것들이 짖어댑니다. 130편 1-2절에서 시인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1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2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기도 했다가, 하나님을 부르짖기도 하는 모습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시편은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자판기도 아니고, 이웃집 아저씨도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문제까지 책임져주시는 영적부모이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4절입니다. "3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4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죄가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부모로 섬기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중간과정에 하나가 있는 것이죠. 4절에서 사유하심, 쉽게 표현하자면 용서입니다. 용서가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고 함께 할 수 있는 겁니다. 신과 함께하는 인간이라...참으로 놀랍고 감사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5-6절입니다. "5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6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파수꾼, 그러니까 보초를 서거나 경비로서 무언가를 밤새 지키는 사람은 "해가 뜨기만을" 기다립니다. 어둠이 사라져 위험요소가 사라질때까지 말이죠. 그 기다리는 시간은 긴장됩니다. 어두워서 긴장되기도 하지만, 자칫 자기 자신이 긴장을 내려놓아 졸거나 사고가 터질까봐 다시 긴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세상은 멈춘듯이 고요하고 미동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나의 경계가 긴장이 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말이죠. 이렇듯 시인은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부르짖을만큼 너무 힘든 이 시간이 멈추기만을 바랍니다. 그러나 파수꾼이나 시인이나 압니다. 아침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말이죠, 하나님이 역사하실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을 압니다. 7-8절입니다.
7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8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는 인자와 사랑, 넉넉함, 풍요함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나의 인생의 죄악, 문제, 실수, 아픔, 갈등, 역경들을 품어줍니다. 안아줍니다. 해결해줍니다.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바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그 바라보며 역사하실 시간동안 나의 심령은 어떻게 변해갑니까? 131편 1절입니다.
1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결코 교만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도움을 바라는 아이의 심정은 부모가 없으면 안된다 말하며, 나는 힘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약함을 더 드러냅니다. 그래서 부모의 힘을 오히려 요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오히려 드러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습니다. 나를 만드셨고, 자녀로 삼아주셨으니 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다른 세속적인 것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들로 내 인생의 의지와 반석을 삼지 않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그런 경우도 있다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을 바라지 않는 자는 1절에서처럼 "마음이 교만하고 눈이 오만"합니다. 기준을 높이 잡습니다. 왜입니까? 의지할 것이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마음과 눈이 높아지니, 행동으로는 "큰일을 이루려 합니다" 모두가 우러러 보는 큰일을 이뤄, 그 성공을 자신의 존재감으로 삼는 것이지요. 그러나 시인은 자신은 평생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것을 결단합니다. 인간이 큰일을 할 수는 있지만, 해보았자 결국 육신세상 안에서 뿐입니다. 결국 인간의 영혼의 문제를 인간은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2절과 같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택합니다.
2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젖을 충분히 먹은 아기가 만족감으로 어미 품에 안겨있습니다. 배가 부르니 하품이 나올 정도로 평온합니다. 고요한 이 시간에 새근새근 잠들려 합니다. 시인은 2절에서 "내가 내 영혼으로 ~있음 같게 하였나니"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하나님 품에서 아기와 같이 있기로 결단하고 자기 자신을 쳐서 다스렸음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높이 있는 것보다 하나님 품에서 있는 것을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권면하기까지 합니다. 3절입니다. "3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며, 이것을 기도문으로 삼아 하나님과 함께 평온하고 또 명예롭게 승리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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