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을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주도권, 하나님의 결정”대로 살아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은 어떠합니까?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나의 생각과 감정보다도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살펴보십니까? 기도로 묵상하며 내 주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간구하고 계십니까?오늘 본문의 시인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주권없이는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1-2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본문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자신의 인생이 “헛된 것이다”라고 3번이나 반복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헛되다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렇게 수고하고 노력한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과연 내가 한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당장에 벌어들이는 수입이나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물론 단기적으로는 그것이 나에게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삶을 뒤를 돌아서 보면, 그것이 아둥바둥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저 달에서 보는 지구는 평화롭지만, 지구 땅 이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로 살아가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선을 그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림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수고로 집을 세우는 것, 성을 지키는 파수꾼의 수고, 일찍 일어나고 늦게 퇴근하며 열심히 일하는 것까지 모두 결국은 아무런 결과물도 남지 않는 연기와 같이 사라질 것이라 명확하게 말해주십니다. 나의 관점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좀 더 넓게 하나님의 시야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기드온과 이스라엘이 미디안 군사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 3만명이 모였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3만명에서 300명이 남을 때까지 사람을 거른 것입니다. 왜 입니까? “너희가 스스로를 구원했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때문 아닙니까? 만약 여러분이 성공하고 있다면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내가 나의 인생을 세웠다는 유혹을 조심하십시오. 만약 실패하셨습니까? 기회입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이 세워주시기를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항상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살고 있음을 의식하고 나의 영혼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3절입니다.
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1-2절에서 말한 시인이 이번에는 “자녀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실 1-2절에서 말하는 집, 성, 떡, 잠 등에서 이미 "일상생활"에 대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오늘 시편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가정생활에 대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중에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라고 합니다.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자식은 주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이다”라고 타번역은 쉽게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은 내가 노력해서 받는 상, 즉 하나님께서 나의 노력을 가지고 물물교환처럼 보상한 것이 아니라 선물의 의미로 하나님이 자녀를 나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만들어서 주었습니까? 누가 인격체로 다듬어서 주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나의 자녀는 내가 잘 알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더 잘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자녀를 낳고 기르며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 인생은 마치 전쟁과 같습니다. 단 한순간도 평안할 때가 없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터지지요. 나는 잘 가고 있는대도 옆에서 들이박고, 뒤에서 들이박습니다. 나는 평안하게 잘 살고 싶은대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곳이 바로 인생살이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전쟁이야기”에 빗대어 이야기합나다. 이 전쟁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바로 무기를 가지고 자신을 지키는 길 아닙니까? 적이 오면 물리치고 나를 보호하는 길을 시인은 “자녀”에게 답이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젊은 자의 자녀”가 이러한 화살이 되어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자녀가 땅을 물려받을 자로써 사회공동체가 사라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중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자녀가 있다는 것은 가문이 사라지지 않고 연속해 존재할 수 있게 됨을 말합니다. 그러니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다른 것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자녀를 낳는 것이 그의 인생과 사회공동체에 있어서 가장 막강한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가 아니라 배우자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요.
인생에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항상 존재합니다. 산을 넘고 또 넘어도 나타나는 것이 산이요, 인생의 고비입니다. 사단원수는 항상 그 때 우리를 향해 조준사격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결정적일 때에 “자녀가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흐름을 따라서 살아가는 이가 아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자녀로 가득한 자는 인생의 위기 때마다 하나님이 만들어준 가정 공동체를 통해 역사하심을 경험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을 붙잡고 주권을 행사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자녀를 나에게 주셨다면, 그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은 나의 인생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정"이라는 제도를 만드셨고, 그래서 자녀를 나에게 주셨습니다. 즉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의 역사가 흘러내리는 통로입니다. 나는 이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배우고 인정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고, 경제적 준비를 한다하더라도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시면 흘러가는 강물이요 공중으로 사라지는 구름과 연기와 같을 뿐입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우상숭배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시키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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