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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YAMEMORY
강해설교/여호수아_가나안을 에덴으로

수 7:22-26

by 우루사야 2022. 1. 24.

22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들을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안에 감추어져 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23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가지고 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쏟아 놓으니라

24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25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26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아간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까지 이어져 7장을 마무리 짓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등한시하는 생각으로부터 범죄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악한 행동을 하기 전에 "우리의 태도"에서부터 죄가 시작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간은 "하나님"을 등한시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말씀과 약속, 이스라엘 전체의 공동체성 모두를 그는 무시하고야 말았죠. 하나님은 이것을 분명히 하고자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간은 하나님을 범했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 전체를 낭떠러지로 몰아세운 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듯",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까 바라보며 이웃을 내가 궁지로 모는 것은 아닐까 고민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참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길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아간은 너무나도 중요한 때에 영적 긴장감을 잃어버리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 탐욕의 소리"에만 집중하고야 말았습니다. 이제 아간의 집을 수색하여 그가 훔친 물건을 찾기에 이릅니다. 22-23절입니다.

22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들을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안에 감추어져 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23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가지고 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쏟아 놓으니라

우리는 이 장면에서 우리가 장차 서게 될 심판대를 바라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모든 과거들을 꺼내실 겁니다. 가장 은밀한 나의 장막, 나만이 알고 있는 그것, 감추어놓은 그것, 다른 이에게는 보일 수 없는 그것을 여호와께서는 들춰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만인이 보는 앞에서 꺼내시고 쏟아 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민망함과 어찌할 수 없음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우리의 인생을 훑어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내가 가졌던 욕심과 정욕, 음란, 시기, 질투, 악행, 교만 모든 것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거기서 이제 두 부류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왼쪽편에는 변호해 줄이가 아무도 없는 홀로 그 심판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요. 오른편에는 변호해줄 이가 있는 이들입니다. 오른편에 있는 이들은 자신이 죄인이고 자신들조차 왼쪽에 있는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악한 자임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살아갔던 자들입니다. 100개 중에 겨우겨우 몇 가지 선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나를 위해 죽어주시어 용서받게 해주셨음을 감사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 죄가 얼마나 이중적이고 뻔뻔한 죄인지 압니다. 사랑받아놓고 다른 이에게 정말 작은 사랑을 주지 못하는 자기자신에 대해 한탄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기도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그의 사랑과 믿음, 신앙과 인생과 타인에 대한 진중한 태도를 봐주십니다. 그것이 모두 "예수의 보혈과 대속, 십자가의 사랑"때문임을 보시며 의롭다고 해주십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만인 앞에 드러내실 마지막 심판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간이 그러한 신앙을 가졌다면, 하나님을 진중하게 대했다면 그는 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겁니다. 24-25절입니다. 

24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25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여호수아는 아간과 아간이 여리고에서 가지고 나온 것들과 그의 자녀와 가축, 재산 모두를 아골 골짜기로 보냅니다. 어떤 이는 이것을 보고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리고성은요? 여리고사람들이 당한 심판은 어떠합니까? 아니면 우리가 마지막에 받을 심판은요? 그 심판은 모든 사람이 받게 되는 심판입니다. 그 심판은 잔인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한 사람의 죄를 온 가족의 죄로 묶어내시는 것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이자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가정으로 묶입니다. 결코 세상에 홀로 태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으로 묶여서 우리는 존재합니다. 아간의 자녀들이 그러했죠.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택한 물건은 진멸하거나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거나" 해야 했던 것입니다. 아간은 이것을 가정에 들임으로써 가정 전체를 "진멸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이 이 재물을 보고 탐욕을 품었을 수도 있고 함께 동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것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습니다. 지금 여호수아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거룩과 진멸"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 가장 주요합니다. 아간은 진멸을 가정에 가지고 들어온 것입니다. 가장의 너무나도 무분별하고 분별력 없음은 결국 가정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가족 구성원 한 사람이 가정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나 한 사람이 가족 구성원 전체를 살리는 일들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아간은 이렇게 진멸을 가지고 가족 전체를 심판으로 몰고 간 것이지요. 

이에 아간에게 돌을 던집니다. 몇몇 학자들은 아간과 소유물에게만 돌을 던졌다고 말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고라당 사건을 보거나 성경 곳곳의 창조와 심판 원리를 보더라도 이 해석은 아간의 온 집이 심판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더 문맥에 맞다고 생각이 듭니다. 24절에는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간이라는 가장 아래에 모든 이들은 "진멸"당합니다. 여리고성과 같이 된 것이지요. 이에 하나님께서 본래 계획하셨던 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으로 가나안을 심판하러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가나안에 정복전쟁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심판대 역할"을 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이 사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26절입니다. 

26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이들에게는 벌써 기억할 돌 무더기가 두 개나 생겼습니다. 요단을 건너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먼저 앞장서신다"는 표시로서의 12돌의 돌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간소유의 모든 것을 심판하면서 생긴 돌무더기였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거룩을 지키는 것이 나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하루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내 인생이 흘러가고 있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유일한 것이라는 사실과 성령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해주고 계심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그 어떤 심판대와 시험도 마땅히 감당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등한시 할 때 우리는 스스로 낭떠러지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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