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AYAMEMORY
강해설교/예레미야_넘어지는 인생, 세우시는 하나님

렘 36:11-19

by 우루사야 2021. 10. 13.

11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12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고관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고관이 거기에 앉아 있는지라

13미가야가 바룩이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을 그들에게 전하매

14이에 모든 고관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오니

15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

16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아뢰리라

17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그가 불러 주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냐 청하노니 우리에게 알리라

18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의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불러 주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19이에 고관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가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요한계시록 구절 중 하나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 지역으로 흐르는 천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인근 히에라볼리 지역에서 발원한 온천수였습니다. 온천수가 옆 동네까지 흘러오니 식을대로 다 식겠죠. 그래서 미지근해쳐서 목욕은 할 수도 없고, 또 수질은 질병을 유도하고 구토증세를 동반하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말씀이 미지근한 신앙태도를 버리고 생수처럼 차갑든지 온천처럼 뜨겁든지, 그래서 사용할 수 있는 물이 되라고 권하는 말씀이라고 해석합니다. 즉 열정이 아니라 미적지근한 태도가 문제인 것이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들이 그러합니다. 바룩은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가 받은 하나님의 명령을 대신 수행하러 그간 하나님이 하신 예언 모음집을 만들어 성전 부속실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그랬더니 예루살렘 시민들은 금식하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적지근한 서기관과 종교계 고관들이었습니다. 이 바룩의 메시지를 들은 미가야가 인근에 있던 고관들에게 이 사실을 전합니다. 11-13절입니다. 

11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12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고관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고관이 거기에 앉아 있는지라13미가야가 바룩이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을 그들에게 전하매

이 사건과 그 메시지를 들은 고관들은 사람 한명을 바룩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가져오라 하니 바룩이 그것을 들고 그들에게 갑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 낭독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놀랍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어떻게 왕에게 보고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14-16절입니다. 

14이에 모든 고관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오니15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16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아뢰리라

여기까지는 먼저 들은 예루살렘 백성들과 같은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간 듣지 않았던 이들은 듣고 놀랍니다. 그들의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그들은 그 하나님의 메시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루마리의 출처, 기록된 경위 등을 묻기 시작합니다. 17-18절입니다. 

17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그가 불러 주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냐 청하노니 우리에게 알리18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의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불러 주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여기서 우리는 말씀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여러가지 태도를 보게 됩니다. 내일 본문에서 살펴보겠지만 시드기야는 이 말씀을 무시합니다. 불로 태웁니다. 그러나 바룩은 감옥에 갇힌 자신의 스승의 처지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데 있어서 거리낌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서기관과 종교계 고관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지금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할지 이리저리 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 놀랍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메시지를 들으면 불같이 화를 낼 시드기야를 두려워하며 19절처럼 바룩과 예레미야를 숨기고자 합니다. 

19이에 고관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가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열심히 사는 것이 진정한 열심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속도와 결과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원하십니다. 서로 같이 얼굴을 맞대고 함께 걸어가며 함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고관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미적지근한 모습으로 하나님과 시드기야 왕의 눈치만 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과 강대국 사이에서 이리저리 눈치만 보는 그간 유다왕들의 모습과 꼭 닮아있습니다.

미적지근한 라오디게아의 행위를 보시며 예수님은 뭐라 하셨습니까?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들이 스스로를 부요하고, 부족함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스스로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모르고 이렇게 자만방자한 모습을 보시면서 "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라고 말씀하십니다. 혼자 방자하게 살아가지 말고, 연약함을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며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열심을 내 회개하라"고까지 하십니다. 

신앙의 흔들림, 신앙의 미적지근함,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는채 신앙생활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하십시오. 성령님이 내 마음에 계심을 찾아내십시오. 그럼 응답하시고 여러분께 말씀하시고,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심을 확인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시며 행복하시길 소망합니다. 

 

'강해설교 > 예레미야_넘어지는 인생, 세우시는 하나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렘 36:27-32  (0) 2021.10.15
렘 36:20-26  (0) 2021.10.14
렘 36:1-10  (0) 2021.10.12
렘 35:12-19  (0) 2021.10.11
렘 35:1-11  (0) 2021.10.10

댓글